숨어들다. 인천에서 세부, 다시 보홀 섬으로

Day 1. 서울. 18/25℃ 흐림


5월 29일. 정신없는 하루였다. 
첫째를 등원시키고 아픈 둘째와 병원에 다녀왔다. 오후 휴가를 낸 남편과 접선해 한시간 거리에 있는 시댁에 둘째를 맡겼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으나 어느새 첫째를 데려와야 할 시각. 남편이 픽업간 사이 나는 5월 말까지 발권을 해야하는 캐나다행 티켓을 알아보고, 마지막으로 짐을 꾸렸다. 

 


세상 참 좋아졌다. 가이드북 없이도 와이파이가 빵빵 터지는 고속철도에서 필리핀 호텔 전화번호며 맛집 정보 등 여행 정보를 챙길 수 있다니. 아픈 아이를 두고 떠나 마음이 무거웠지만 차창에 비친 가족의 모습을 챙기며 이번 여행의 목적을 다시 생각했다.



밤 10시 15분에 출발하는 세부퍼시픽. 늦은 시간이라 아이가 힘들어 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공항에서 동갑내기 친구를 사귄 진아는 쉴 새 없이 뛰어다니며 조잘조잘 에너지가 넘친다.

 

 

예정시간보다 30분을 더 기다려야 탈 수 있었던 비행기에서는 여유좌석을 찾아 두 아이를 함께 앉혔다. 아이들은 마치 오랜 친구라도 되는냥 서로의 다리를 포개고 누워 장난을 치다가 스르륵 잠에 빠졌다.

Day 2. 세부-보홀. 26/32℃ 때때로 흐림


세부에는 새벽 두 시가 넘어 도착할 수 있었다. 아침에 바로 보홀섬으로 이동을 해야했기에 비용도 아낄겸 예약해둔 마사지 샵으로 향했다. 야간 마사지를 예약하면 한국의 찜질방 같이 하룻밤 묵어갈 수 있다. 이때 숙박비는 마사지 값만 내면  공짜. 공항픽업까지 무료로 해주는 곳에서 잠깐 쉬어가기로 했다.

 

 

마사지는 참 시원했다. 하지만 눅눅한 마사지 침대에서 자는건 생각보다 힘들었다. 게다가 쉼없이 들려오는 닭 울음소리. 동이 트니 지붕을 보수하는지 머리위로 철판을 두드리는 소리까지 더해졌다. 상황이 이쯤되니 누가 먼저랄것 없이 일어나 앉았다. 아침 일곱 시, 거리로 나갔다. 익숙한 동남아시아의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 사람보다 차가 우선인 도로에서 우리는 현지인 뒤에 바짝붙어 뛰며 근처 마트로 향했다.

 


무척 저렴해보이는데, 막상 계산해보면 그닥 싸진 않은 물가. 망고가 제철이라길래 2Kg을 샀다. 보홀 섬물가는 더 비쌀것이 분명했지만 무거운 것은 그때그때 사기로 했다. 

 

 

오후 배편을 예약했으나 작은 공항 근처 마을에서는 도무지 할 일이 없어 일찌김치 부두로 향했다. 제법 큰 배가 다니는 항구의 모습. 710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답게 바닷길을 연결하는 교통수단이 잘 발달되어 있다.


가장 쾌적하다는 슈퍼캣 페리를 타고 산미구엘 한 캔을 기울이며 보홀 섬으로 향한다.


 

두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보홀 항구의 모습은 세부와 큰 차이가 없어보였다. 지겹게 달라붙는 호객꾼들을 물리치고 큰 길로 나가 일단 점심부터 먹기로 했다. 하지만 걸어도 걸어도 보이지 않는 식당. 게다가 인적 드문 길 한복판에 외국인이라고는 우리 세 식구 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건장한 남자 둘이 뒤를 쫓고 있었다는. 그들은 우리가 걸으면 걷고 멈추면 함께 멈춰 담배를 피웠다.

 

 

섬에는 택시가 없었다. 태국의 툭툭과 비슷한 트라이시클만이 있을 뿐. 엔진의 떨림이 그대로 전해지는 좌석에 앉아 매연을 마시며 달려야 하는 트라이시클은 정말이지 피하고 싶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두려운 마음에 가장 먼저 지나가는 트라이시클을 잡아타고 바로 보홀섬 유일의 몰이라는 BQ몰로 향했다.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좁은 좌석에 트렁크와 배낭을 싣고, 아이까지 안아 무릎에 앉혔다.

불안한 표정의 스티브. 과연 리조트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까?



다행히 기사는 큰 흥정 없이 BQ몰에 우리를 내려줬다. 현지인로 북적이는 푸드코트에서 떨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보홀에서의 첫 식사를 했다. 고기 꼬치, 고기 볶음, 고깃 국. 무슨 메뉴를 이렇게 골라왔냐며 남편에게 핀잔을 주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이렇게 먹고 있었다. 채소가 귀하다더니... 시장이 반찬이라고 투덜거리면서도 보이는 음식을 싹 비워냈다.

  


다시 트라이시클을 타고 30여분을 달려 도착한 팡라오 섬의 리조트. 바깥에 비하면 천국이 따로 없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에 감사하며 맥주 한잔을 기울인다. 휴식을 위한 여행을 떠났지만 첫 이틀은 뜻하지 않게 다이나믹해졌다. 계획 없이 떠난 6일간의 필리핀 힐링 여행. 잘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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