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보니 더욱 진한 에메랄드 빛! 캐나다 로키에서 아이와 함께 카누타기

아이들과의 여행은 언제나 '효율'과는 거리가 멀다. 급할수록, 중요할수록 더욱 그렇다.

나가기 위해 두 아이와 신발을 신는다고 치자. 양말을 신고 신발을 신는데 내 발을 포함해 총 여섯 개의 양말과 여섯 개의 신발을 신어야 한다.

직접 찾아 신지는 못해도 아이들이 협조를 좀 해주면 좋으련만 조급할수록 아이들은 신발을 바꿔 신거나 천방지축 날뛰다가 사고를 내곤 한다.


그날도 그랬다.

아침 햇살을 받아 에메랄드 빛으로 빛나는 보우강에서 카누를 즐긴 후 밴프 애비뉴에 있는 동물 박물관에 가보려던 우리의 계획은

아침부터 시작된 진아의 구토로 사실상 백지화가 됐다.



전날 연달아 두 끼 고기를 먹였더니 급체를 했는지 물만 마셔도 토하는 진아. 


'어린이집 소풍이나 보낼 것을... 괜히 데려와서 고생만 시키는 것이 아닌가?'


보석을 박아놓은 듯 화려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보우강가에서 더는 토할 것이 없는 데도 헛구역질을 하는 아이의 등을 두드리며 만감이 교차했다.



짙은 에메랄드 빛의 아름다운 경치가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졌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지친 아이를 비스듬히 앉히고 곁에 앉아 한없이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는 것뿐.



결국, 오늘은 모든 일정을 접고 하루 쉬기로 했다.

아이에게 약을 먹이려고 비상약 상자를 뒤적인다. 이런~! 아이용 소화제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일요일이라 문을 열지 않은 약국. ㅠㅠ


그런데 신이 도왔는지, 밴프에 가족 여행을 온 옛 직장 동료가 때마침 우리 앞을 지나갔다.

내가 허둥대며 약국을 찾아 헤매는 사이 진아를 알아보고 차에서 내렸단다.

그녀의 아이 역시 두 돌이 채 되지 않은 유아. 가지고 있던 비상약의 거의 전부를 나눠 주었다.


정말 신이 도왔다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후에도 몇 번 헛구역질했지만 약을 먹고, 낮잠을 잔 진아는 몰라보게 좋아졌다.

한국에서 가져간 누룽지에 물을 부어 뜨겁게 한 술 먹이니, 곧 기분이 좋아진 아이.

쳐질 때는 한 없이 늘어지지만, 또 회복되면 바로 기운이 넘치는 것이 아이의 특성 아닌가?


진아는 배를 타고 싶다며, 아침에 갔던 보우강으로 가자고 조른다.

걱정이 좀 됐지만 맑은 공기 마시며 유유자적 떠다니면 기분이 더 좋아질 수도 있을 것 같아 고민 끝에 다시 차를 몰았다.



오후의 보우강은 자전거와 카누를 빌리는 학생들로 북적였다.



고기가 좀 있는지 한가로이 플라잉 낚시하는 사람도 보였다.

그러고보니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의 명장면인 플라잉 낚시 장면을 촬영한 곳도 이 보우강이라고 한다.



다시 찾은 렌탈 하우스. 부쩍 많아진 사람들 틈에 줄을 서고, 카누를 빌리는 서류를 작성한 후 몸에 맞는 구명조끼를 챙겨 나왔다.

카누는 어른 3명까지 탈 수 있다. 아이가 있는 가족은 아이 2명에 어른 2명까지 가능하다.

우리 가족은 마침 한 배를 탈 수 있는 어른 2, 아이 2 구성.



하지만 직원은 안전상 유아의 탑승을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굳은 의지를 보이니 정균에게 맞는 유아용 구명조끼를 내민다.

ㅎㅎ 이렇게 작은 구명조끼라니. 아이의 배와 머리까지 감싼 빨간 구명조끼가 제법 귀엽다.




드디어 도착한 카누 선착장~! 우리 앞에서는 카약을 빌린 사람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손이 달리는지 낚시를 하던 청년이 장화를 벗고 우리를 돕는다.

어른이 앞 뒤로 앉고 아이는 가운데 한 명씩~. 정균이부터 안아서 가운데 앉힌다.


엇... 그런데 정균이는 9개월 아기~!

혼자 앉을 수는 있지만 혼자 앉혀 강 한가운데로 나갔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

아이를 달라길래 냉큼 넘겼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정균이는 벌써 진아와 더불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


손사래를 치며 내가 다시 아기를 안아 드니 청년이 한다는 말,


"그럼 노는 누가 저을 건데?"



그렇다. 혼자 타는 카약과 달리 카누는 두 명 이상이 힘을 합쳐 노를 저어야 하는 배다.

앞으로 나갈 때는 엇갈려서, 방향을 틀 때는 한 방향으로 노를 저어야 배가 움직인다.

그런데 어른 하나가 애를 안고 있으면 노는 당연히 남편 혼자 저어야 하는 상황.

혼자 젓기는 무지 힘들 거라며 겁을 주는 청년에게 남편은'해병대 교육에서 고무 보트를 저어봤다'는 논리로 패들(노) 하나를 건네받았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기우뚱 거리며 카누가 출발했다.



남편이 노를 젓는 방향대로 배는 기우뚱 기우뚱. 아이에 카메라까지 들고 맨 앞에 앉아있는 난 솔직히 겁이 났다.

가운데 혼자 타고 있는 진아도 불안한 기색이 역력.

내가 뒤를 돌아보면 배가 더 흔들려서 몇 번 돌아보다가 포기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햇빛 쨍쩅~ 여름 오후~ 장난꾸러기들~ ♪
맑고 푸른~ 냇가에서~ 물장구를 치네~ 송사리 잡으러 살금 다가가니~♪



어느덧 카누는 안정을 찾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고, 진아는 종달새처럼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안가 '감 잡았다'며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는 남편의 웃음 섞인 한 마디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웃음 띤 진아의 얼굴이...!



노랫소리가 흥겨운 건지, 바람이 좋은 건지 한껏 신이 난 정균이.



못난이 웃음이지만 내 눈엔 예쁘기만 하다.^^




보우강은 밴프 다운타운 남쪽으로 흐른다. 마릴린 먼로 주연의 '돌아오지 않는 강'을 촬영한 보우 폭포(Bow Falls)가 이 강에 있다.

물론 카누는 폭포의 반대쪽인 버밀리온 호수 쪽으로만 저어야 한다.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고 노를 저었다가는 여지없이 안전요원의 호루라기 소리가 울려 퍼진다. (우리가 그랬단...;)


강 상류로 연결되는 좁은 개울을 타고 한 바퀴 돌아오는 데는 넉넉잡아 두 시간이 걸린다.

우리 가족은 버밀리온 레이크까지는 가지 않고 풍류를 즐기는 선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사연 많은 보우강 카누타기. 진아 덕분에 더욱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다.

한낮의 햇살에 반짝이는 보우강을 배경으로 오늘을 추억으로 남기기 위해 가족 사진을 한 장 찍어봤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했는데, 강과 가족의 모습을 참 예쁘게 담았다. (나중에 보니 그분 얼굴과 팔뚝 등에 칼에 베인 흉터가 꽤 많더란...;)



남편의 길고 강한(!) 팔을 이용해 가족 셀카도 한 장~!

더 자연스러운 가족의 모습이 담긴 것 같아 보기 좋다. 새초롬한 진아의 표정까지.



마지막으로 생명의 은인~! 허대리 가족과 찍은 사진도 한 컷 올려본다.

정말 고마웠어요~! *^_^*


밴프 애비뉴를 관통하는 보우강은 주변을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지다.

하지만 캐나다 로키와 보우강의 속살까지 들여다보고 싶다면 캐네디언 처럼 카누를 타는 것을 추천한다.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천천히 둘러보는 아름다운 풍경과 가까이 보는 진한 에메랄드 빛 강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가족과 함께라면 더욱.


[여행 TIP]

블루카누 (BLUE CANOE)

* 카누 & 카약 렌탈 비용 (보트 한 척당, 모든 장비 포함): 1시간 $36, 추가 1시간 $20

* 자전거 렌탈 비용 (모든 장비 포함): 1시간 $12


관련 정보: Discover Banff Tours (http://www.banfftou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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