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멎게하는 모레인 호수의 일출, 가슴에만 담은 사연

"새벽 다섯 시에는 일어나야겠어"

밤마실 나갔던 남편이 돌아오자마자 하는 말.

호텔에서 출발하는 모레인 호수 투어 전단을 보니 출발이 새벽 다섯 시란다.

요즘 보통 해가 7시 즈음에 떠서 한 시간 전에 준비하면 되려니 했는데, 서둘러야겠다.

 

동틀 무렵 캐나다의 하늘


록키산맥의 수많은 호수 중 최고라 불리는 레이크 루이스와 모레인 호수. 캐네디언 록키가 있는 알버타주 관광을 소개하는 수 많은 책자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모레인 호수는 한때 20달러짜리 캐나다 화폐의 뒷면 그림으로 사용되기도 했던 곳이다. 대규모 관광지로 개발된 레이크루이스도 멋지지만 꼬불꼬불한 산길을 올라야만 만날 수 있는 모레인 호수는 산으로 둘러싸인 장엄한 풍경이 예술이라고 해서 기대가 컸다.


모레인 호수로 가기위한 주차장, 뒷산마저 포스있다.


모레인 호수는 새벽 동틀 무렵이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캐나다 로키에 왔으니 나도 하루쯤은 새벽 산행을 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곤하게 잠든 아이들을 깨워 추위와 싸우며 일출을 기다리기엔 무리인것 같았다. 선잠을 깨울만큼 딸아이에게 매력적인 광경일까 의문도 들었다.

결국, 우리 부부는 둘째만 데리고 모레인 호수에 다녀오기로 했다. 첫째에게는 전날 밤 함께 갈 것인지를 묻고는 아침에 해야할 행동과 가지고 놀 스티커북 등의 위치를 미리 일러주었다.



"그 어디에서도 이곳처럼 가슴 설레는 고독감과 거친 장대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없었다."

1899년 이 호수를 발견하고 '모레인'이라고 이름을 붙였던 윌콕스가 한 말이다. 


락파일 트레일(Rockpile trail)을 따라 10여분간 가파른 산을 올라 여명이 밝아오는 모레인 호수를 마주했을 때의 느낌이 바로 그랬다.

고요하다 못해 적막이 흐르는 모레인 호수, 호수를 둘러싼 봉우리 사이로 여명이 밝아오는 장엄한 일출 장면은 그저 숨죽이고 바라볼 수 밖에 없는 풍경이었다.


락파일 트레일(Rockpile Trail) 정상에서 바라 본 모레인 호수 (by 스티브, 아이폰으로 촬영)


그런데 내가 이 멋진 풍경을 숨죽이고 바라만 봤던 이유가 또 한가지 있다.


사진에 관심이 많은 여행자라면 한번쯤 풍경사진에 욕심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보통 잘 찍은 사진, 감동이 밀려오는 풍경사진은 보통 일출이나 일몰 즈음의 '매직 아워(Magic Hour)'라 불리는 시간대에 찍은 사진이 많다.

전문가가 찍은 모레인 레이크 사진도 광선검이 비추기 시작하는 새벽녘의 사진이 대부분이다. 텐 픽스(10 peaks)라 불리는 열개의 봉우리가 둘러싼 호수의 색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대이기도 하고, 오후가 되면 역광이 되기도 해서이다.


빛이 적은 이 시간대의 사진은 '삼각대'가 필수이다. 그리고 노출 차이가 심한 하늘과 땅은 '그라데이션 필터'같은 노출을 잡아주는 도구가 필요하기도 하다.

(참고링크: 풍경사진을 잘 찍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액세서리 by 꿈꾸는 여행자)



하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 짐 줄일 생각만으로 가득차있던 나는 제일 먼저 삼각대를 빼놓았다.

잠깐의 실수가 이렇게 아쉬운 상황을 만들 줄이야....

아무리 숨을 길게 멈춰보고, 바위에 올려놓고 촬영을 해 보아도 흔들리고 노출 편차가 심한 사진만 찍힐뿐이었다.



수많은 포토그래퍼들이 호수 주변에서 사진찍는 모습을 바라보며 귀동냥으로 노출 값 등 정보를 얻어봐도 내 사진은 이렇게 어둑어둑 할 뿐...;


포토그래퍼들 사이에서 당당히 폰카로 촬영한 모레인 호수 (by 스티브)


나중에 비교해보니 오히려 스티브가 아이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훨씬 멋지더라는... ㅠㅠ

호수 주변에는 죽은 나무들이 떠내려와 그대로 쌓여 있었는데, 나무와 돌, 호수와 산이 어우러진 모습이 정말 장관이었다.


호수 주변에 자연스럽게 쌓인 고목들 (by 스티브)


노출 편차가 심한 하늘과 땅, 락파일 트레일을 내려오며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보다가 결국 포기. 조용히 밝아오는 새벽 풍경을 가슴에 담기로 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제대로 사진을 배워보리라 다짐하며....

카메라를 내려놓고 감상한 풍경은 오직 풍경에만 집중할 수 있어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스티브는 이 때를 이번 캐나다 로키 여행중 가장 인상깊었던 순간으로 꼽는다.




산을 내려오니 잠이 든 정균. 아이 안고 새벽 산행을 감행한 스티브, 고생 많았어요~.


 

다행히 진아는 깨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함께 잠시 눈을 붙이고 맞이한 아침.



굿모닝~! 새벽 산행을 하고 왔더니 하루를 번 느낌이다.

함께 다녀온 둘째의 컨디션이 좋아보여 더욱 기분 좋은 또 다른 하루의 시작. 이제 레이크 루이스로 가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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