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어느날, '와글와글 활력 운동회'
- 라이프 로그
- 2012. 11. 2. 07:30
참기름집과 로스팅 하우스가 공존하는 우리동네.
홍대 앞이라기엔 홍대에서 너무 멀고, 그렇다고 이름없는 뒷골목이라기엔 좀 별스러운
상수역 4번 출구 일대 골목길에서는 매년 특별한 축제가 열린다.
지난 해부터 썸데이 페스타(Someday Festa)라는 이름을 내걸고 시작된 이 뜬금없는 축제는 올해로 벌써 세번째.
올 봄에는 '오월 어느날 축제' 감성적인 컨셉으로, 이번 가을에는 '와글 와글 활력 운동회'라는 다소 키치적인 이미지로
벼룩시장, 강좌, 공연, 전시, 영화상영, 마술쑈, 주점, 운동회, 팔씨름 등 말 그대로 활력 만점 즐길거리들이 넘쳐났다.
지난 주말, 시끌벅적 했던 동네 길로 함께 가볼까?
집에서 10분 정도만 걸으면 닿을 수 있는 상수동 카페 골목. 이 골목이 바로 축제의 핵심 골목 되시겠다.
골목에는 유명한 '이리카페'를 비롯해 '그문화 다방, 그문화 갤러리' 등 신인 작가들의 그림이나 사진을 전시하고 뮤지션들의 공연을 볼 수 있는 문화공간이자 카페들이 많다.
상수동 카페 골목은 요즘 진짜 홍대 앞 카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자본에 밀려 갈 곳을 잃은 홍대 앞의 작은 카페들이 하나둘씩 상수동 골목에 자리를 잡으면서 주변의 오래된 주택, 상점들과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거리가 되었다. 주말 저녁만 되면 인파와 쓰레기로 가득 차는 요즘 홍대 앞과는 다른, 문화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전시와 체험, 공연이 있는 거리
초입의 그문화 갤러리에서는 김용철, 곤도 유카코 2인전, '<민화의 목적> 쉘위댄스 2번째 (2012.09.08~11.05)'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갤러리 앞에서는 도예 체험이 한창. 직접 물레를 돌려 흙을 느껴볼 수도, 아기자기한 도자기 소품들을 구경할 수도 있었다.
쌀쌀한 가을 날씨인데도 연신 물을 묻혀가며 정성스레 흙을 다듬는 그녀의 손길이 왠지 프로페셔널해 보였단.
관심있게 지켜보던 진아는 직접 물레를 돌려볼 기회를 얻기도 했다.
언뜻 보기에는 그저 조용한 주택가 같지만 이 길에는 특색있는 카페들이 많다.
와글와글 활력 운동회 기간 중 로스팅 마스터즈에서는 무료 드립커피 강의, 스톡홀름에서는 인디밴드 공연 등이 줄이어 펼쳐졌다.
심야식당 주방에서 열린 이색 인디밴드 공연
축제 시작 전, 일정표를 보고 내가 찜뽕해놓은 공연은 바로 김씨네 심야식당에서 열리는 '숫'의 공연.
사실 밴드를 잘 알아서 공연을 꼭 보고 싶었다기 보다는 전부터 한번 가보고 싶었던 만화 심야식당같은 선술집이기에 관심이 있었다.
게다가 닷지 주방을 오픈해 스탠딩 콘서트를 연다니, 왠지 뭔가 색다른 공연이 될것 같았다.
앨리캣 맥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입장권을 끊고 안으로 들어가니 이제 막 공연이 시작된듯 싶었다.
역시 상상했던것 같이 좌석이라고는 닷지 자리 밖에 없는 작은 선술집.
전기밥솥과 프링글스 사이로 보이는 뮤지션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 보였다.
이 무대가 정식 공연으로는 처음이라는 '숫'. '처음'이라는 밴드의 이름처럼 풋풋한, 하지만 가을 느낌 물씬 나는 진지하고 멋진 공연이었다.
특히 이소라의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나 이상은의 '어기야 디여라' 등을 연주할 때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노래들이었기에 완전 몰입! 자작곡인 '입수보행'도 꽤 괜찮았다. 썸데이 페스타 페이스북(http://www.facebook.com/somedayfestakorea)에 '아티스트와의 거리 1m, 초 근접 공연'이라고 올라와 피식 웃었었는데, 정말이지 나를 위한 공연같이 느껴졌단.
'숫' at Someday Festa 20121028 from greenday on Vimeo.
밤에는 심야 식당일지 몰라도 가을의 햇살을 받은 목조 건물은 온통 따스한 기운이 가득하다.
레이스가 있는 진짜 운동회
심야식당 앞 테이블에 놓인 진아의 오뎅과 나의 앨리캣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 앨리캣 생맥주를 한잔 받아들고 골목으로 나왔다.
내가 공연을 즐기는 동안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을 남편의 상태가 궁금하기도 했고, 그에게도 즐길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바톤 터치랄까?
진아는 마침 같은 원에 다니는 친구를 만나 신이 났고, 정균이의 눈에는 잠이 들었다. 슬슬 유모차를 밀며 맥주를 홀짝인다.
앨리캣은 캐나다에서 병맥주로 마셔 본 그 맛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브라운 맥주 특유의 쌉싸름한 맛이 안주 없이 즐기기에도 딱 좋았다.
좁은 골목길에서는 세발 자전거 경주, 달리기, 폐현수막 줄다리기 등 '골목 운동회'라는 이름을 건 진짜 운동회 다운 이벤트가 열리고 있었다.
이리카페 앞에서 차량을 통제하고, 부녀회 왕언니들이 솔선 수범해 자전거를 탄다.
다큰 어른들이 조그만 세발 자전거에 다리를 구겨 넣고 앉아 뒤뚱뒤뚱 페달을 밟자니 웃음부터 난다.
승패를 떠나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 일상 속에서 소박한 웃음과 행복을 찾는 사람들의 모습이 참 예쁘다.
아기자기 벼룩시장
길 한켠에서는 벼룩시장도 열리고 있었다. 카페마다 테이블 몇 개를 늘어놓고는 옷가지며 소품들을 팔고 있었다.
너무 예뻐서 하나 사고 싶었던 빨강 원피스. 작은 사이즈 밖에 없어 아쉽지만 만지작거리다 놓고 왔다.
올 겨울, 아이들의 목을 따뜻하게 감싸줄 플리스 목도리와 수제 덧신도 나왔다. 직접 만든 것인지 알록달록 귀엽다.
카페 내부에도 예술적인 분위기 물씬 풍기는 가방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길가에는 독특한 컨셉의 엽서를 파는 '초콜릿 우체국(http://cafe.naver.com/chocolateletter/1381)'도 만날 수 있었다.
절기마다, 일년에 16번 편지를 보내주는 우체국, 그래서 편지를 받아보며 '아. 계절이 또 이렇게 바뀌는구나'를 느낄 수 있는 감성 우체국이란다. 이미 팬이 꽤 있는 듯. 여기에서 난 호주로 보낼 가을 느낌 물씬 나는 엽서 하나를 샀다.
축제의 밤이 찾아오면...
밤이 되자 카페 거리엔 먹거리 노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카페 Crowded에서는 '가정식 꼬치구이'를 표방하며 닭고기, 삼겹살, 은행, 마늘 등을 숯불에 구우며 솔솔 냄새를 피워댔다.
견디지 못하고 하나 겟~! 매콤한 삼겹살 꼬치는 맥주를 부르는 맛~!
골목길 운동회가 열리던 참기름 집 앞에는 주점이 열렸다.
찬 물에 담궈놓은 막걸리와 지글지글 파전이 익어가는 모습을 보니 대학시절 주점을 열어 동기들과 파전을 굽던 아련한 추억도 떠오른다.
부녀회에 잘보여 어묵 하나를 공짜로 얻은 진아. 특별석을 마련해 주셔서 혼자 편히 앉아 먹었다. 그렇게 좋은지...?
홍대 앞이라기엔 홍대에서 너무 멀고, 그렇다고 이름없는 뒷골목이라기엔 좀 별스러운 우리동네 골목길에서는
매년 이렇게 수상하고 즐거운 축제가 벌어진다.
언제 어떻게 열릴지 몰라 더욱 궁금하고 기다려지는 썸데이 페스타.
내년 언젠가도 이렇게 활력 넘치는 골목길 축제가 벌어지기를 기대하며...
그리고 내년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동네 축제를 함께 즐길 수 있기를 기원하며...
'일상은 늘 평범 하지만 하루하루가 모여 인생이 됩니다.'라는 축제의 슬로건처럼
평범한 하루하루를 소중히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이렇게 늦가을의 어느날 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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