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밤의 야식번개? 광장시장 먹자골목!
- 센티멘탈 여행기/한국 구석구석
- 2013. 2. 21. 07:30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던 어느 평범한 주말 저녁, 남편에게 문자 한 통이 날아들었다.
내용을 슬쩍 보니 광장시장 번개를 청하는 동생의 제안이었다.
"지금? 아이들을 데리고?"
광장시장 밤벙개는 보나마자 술 번개. 복잡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종로 한복판이니 차를 가져갈 수도 없고,
어떻게 시장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해도 좁고 사람 많은 시장통에서 과연 제대로 한 잔이 가능할까 걱정이 됐다.
하지만, 말을 뱉고 보니 또 못할 것도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여행도 다니는데... 그깟 시장 쯤이야.
내가 광장시장을 다니기 시작한 건, 10여 년 전 풋풋했던 신입사원 시절부터였다. 당시 난 연수원에서 만난 남자친구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이곳 칼국수를 맛봤는데, 즉석에서 반죽을 썰어 한 그릇 가득 끓여내는 국수가 정말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딱딱한 나무의자에 일렬로 앉아, 목덜미로 꽂히는 행인들의 따가운 눈총을 견디며 재빨리 먹어야 했지만 시장통에 붙어 앉아 뜨거운 국물을 호호 불어가며 눈을 맞추던 재미는 잊을 수 없다.
그날 이후로 우린 광장시장에 오면 버릇처럼 봉천분식의 칼국수부터 찾는다. 술 약속을 했어도 일단 국수로 배를 든든히 채운 후에 이동을 하곤 했다.
요즘은 예전만큼 자주 찾지는 못하지만, 늘 같은 자리에서 여전한 모습으로 우릴 반겨주시는 아주머니를 볼 때면 왠지모를 안도감이 느껴진다.
이곳에 그 분이 아직 계시다는 것 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기분이랄까?
이 집 비빔냉면도 칼국수 못지 않게 유명하다. 학교앞 분식점에서 언젠가 먹어봤을 법한 달달한 냉면은 매콤새콤달콤한 맛에 계속 손이 간다.
냉면은 즉석에서 면을 삶아 고추장, 설탕, 식초, 깨 등을 뿌려 손으로 조물조물 무쳐주는데 바로 곁에서 보니 양념병을 대충 집어 뿌리는 데도 간이 딱 맞다.
그 모습이 신기해 아주머니께 노하우를 물었더니 '36년 한 자리에서 냉면을 무쳤으니 이젠 안 봐도 되지 않겠느냐'며 껄껄 웃으신다.
36년 전 단골들이 이젠 자신과 같이 늙어간다며 인생무상을 논한다.
칼국수는 꼭 이 슴슴한 열무김치와 먹어야 맛나다. 슴슴한 열무를 냉면에 살짝 얹으면 바로 열무냉면으로 업그레이드가 되기도 한다.
젓가락, 숟가락, 손가락,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앞에 놓인 음식에 충실한 사람들.
제 손가락 만한 칼국수 가락을 잡고 오물대는 귀여운 조카의 모습에 진아의 어린 시절이 오버랩 된다. 불과 몇년 전인데, 훌쩍 커버린 것 같다.
오늘도 둘째를 먼저 챙기는 자상한 아빠. 14개월, 이제 이유식 떼서 외식도 가능하다~! 음하핫.
봉천분식에서 이미 배는 불렀지만, 광장시장까지 와서 막걸리 한 사발 하지 않고 그냥 갈 수 없었기에 근처 순대집을 찾았다.
알고보니 오늘이 동생네 식구들은 첫 광장시장 나들이란다.
얼마 전 다큐 3일, '36.5℃ 인생 용광로종로 광장시장 먹자골목'편에 나온 시장의 모습을 보고 별렀다고.
어쩐지 시장에 활기가 넘친다 했다. 보통 때보다 사람도 서 너배 쯤 많은 것 같고...
광장시장의 먹자골목 상점들은 모두 200여개, 모든 음식을 다 맛보게 할 수는 없지만, 명물이라는 녹두 빈대떡과 마약김밥, 순대 정도는 사주고 싶었다.
결국 순대를 비롯한 김밥과 빈대떡을 광장 뷔페식으로 포장해와 집에서 아이들을 재우고 3차를 달렸다는.... 배부른 결말...;
사실, 발 디딜틈 없는 시장통에 아이들을 데려간 건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복잡한 곳에서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아기들 수발을 드느라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부대끼며 느끼는 맛이 바로 시장의 참맛이 아닌가? 비록 이상과 현실은 판이하게 달랐지만, 지나고 보면 그마저도 추억이 될 것이다. 언젠가 우리 아이들도 부모 손 잡고 호호 불며 먹던 칼국수를 추억하게 될 것이다.
추운 겨울, 뜨거운 김 모락모락 피어나는 시장풍경이 유난히도 정겹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