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노 공원 벚꽃 질 무렵, '당신을 사랑합니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찰나적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아름다운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뜨거웠으나 불붙은 그 순간부터 서서히 식기 시작하는 사랑처럼.

탱탱하게 부풀어 오른 팝콘이 터지기 시작하는 그 순간, 벚꽃은 흩날리기 시작한다.

 

 

들어서는 순간,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던 우에노 공원 입구.

 

"오늘을 넘기면 안될 것 같아~!" 일기예보를 보며 남편이 말한다.

어제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스치듯 본 공원 풍경을 떠올려보니 이 정도 날씨라면 정말 벚꽃이 만개했을 것도 같다. 내일은 비가 온다니 오늘이 아니면 벚꽃 중의 벚꽃이라는 우에노 공원 벚꽃은 영영 놓칠 것도 같았다. 모든 일정을 뒤로하고 도시락만 달랑 준비해서 서둘러 공원으로 향했다. 

"와~!" 공원 입구에서부터 절로 터져 나오는 탄성. 아름드리나무마다 굵게 드리운 가지 끝에는 마치 마지막 한송이까지 다 피워내겠다는 듯, 그야말로 만개한 벚꽃의 탐스러운 향연이 펼쳐졌다.

 

 

하나미를 즐기는 사람들

 

 

우에노 공원을 찾는 이방인에게 벚꽃의 향연과 더불에 인상적인 풍경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푸른 방수포의 향연이다.

'왜 파란색이어야만 하는 걸까? 벚꽃과 어울리는 분홍색이거나, 나무와 어울리는 초록색이면 안 되는 걸까?'

방수포 위에서 박스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을 보면 자칫 노숙자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곳에서만큼은 누구나 이 방수포를 차지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가끔 일본 드라마를 보면 하나미(花見, 벚꽃놀이)때 얼마나 좋은 자리를 맡느냐에 따라 신입사원의 능력을 평가하기도 하던데, 실제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전날부터 밤을 새웠음직한 사람도 볼 수 있었다.  

 

 

할아버지 한 분이 손짓을 하신다.

아이들과 빈자리를 찾아 헤매는 우리가 안쓰러웠는지, 자신은 저녁 6시부터 사용할 예정이니 들어와 점심을 먹고 가라는 것이었다.

 

첫째는 벌써 신발을 벗고 있다. 못 이기는 척 우리도 그들 틈에 끼어 방수포 위에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꽃무늬 돗자리를 펼쳐본다.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이 도시락 위로 떨어진다.

 

 

꽃잎은 돗자리 위에도, 가방 위에도, 아가의 머리 위에도 흩날려 떨어진다.

 

 

 

 

꽃 비가 내릴 때면...

 

 

 

 

점심을 먹고 본격적으로 산책에 나섰다. 오후가 될수록 한번 바람이 불 때마다 흩날리는 벚꽃잎도 많아졌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하나미'라는 소리에 남편이 '하나비(花火)-불꽃놀이'라고 하는 거라며 친절하게 일러준다.

그걸 듣고 난 '아~ 불꽃놀이를 하듯 아름답게 흩날리니 벚꽃을 불꽃이라고도 표현하는구나.'라며 낭만적인 일본인이라 생각했더랬다.

 

알고 보니 하나미는 花見, 벚꽃놀이라는 일본어였다는...;

덤앤더머 같은 부부지만, 그래서 이렇게 함께 하고 있나 싶기도 하다. ^^

 

 

 

꽃 바람 사이로 아이가 웃는다.

 

 

한참 사진을 찍고 돌아보니 아이가 다른 집 방수포에 앉아 있다. 뭘 하나 가만히 봤더니 방수포 위에 떨어진 깨끗한 벚꽃잎을 손으로 쓸어 모으고 있었다.

 

 

 

소중한 벚꽃잎을 내게 주려는 예쁜 아이. 나는 그냥 고슴도치가 되고 싶다.

 

벚꽃으로 쓴 글씨

 

 

음악이 없어도 절로 춤이 춰지는 벚꽃의 마법.

 

 

벚꽃 아래에서는 누구나 사진작가가 된다.

 

 

깨끗한 방수포만을 골라 옮겨 다니며 벚꽃 놀이에 심취한 아이. 문득 딸아이를 보니 벚꽃을 모으는 것뿐만 아니라 열심히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다.

 


U ?

 

 
아... I Love U. 아이는 연인들이 만들어 놓은 글씨를 따라 만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라면 누구와든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 같다.

벚꽃 아래 쉽게 핀 사랑은 벚꽃만큼이나 가볍겠지만. 

 

 

무뚝뚝하지만 사려 깊은 남자와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여자, 그들은 그렇게 아이가 떠날 때까지 한동안 꽃글씨를 주고받았다.

 

 

우에노 공원의 벚꽃 질 무렵, '당신을 사랑합니다.'

 

 

 

 

비록 찰나의 아름다움이지만, 그 황홀한 찰나를 함께 함으로써 순간은 영원이 되기도 한다.

 

 

낱낱의 찰나가 모여 사랑은 더욱 견고해지기도 한다.

 

 

우에노 공원의 벚꽃 질 무렵, 흩날리는 벚꽃 사이를 누비며 새삼 소중한 사랑 하나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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