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명 대가족의 '우당탕~! 3박4일 제주여행 스케치'

"엄마~ 제주 나라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해요?"

창밖으로 제주의 풍경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6살 딸아이가 내게 말한다.

하긴, 비행기만 타고 내리면 낯선 모습의 사람들이 걸어오는 뜻 모를 말들에 눈을 반짝이던 너였지.

 

제주 나라 사람들... 실제로 제주도는 '제주 이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요즘의 우리 세대에게는 꿈의 섬이다.
각박한 도심과 직장에서 벗어나 조금 빨리 '인생 2막'을 시작하고자 하는 30~40대들은 요즘엔 제주도로 '이민'을 간다. 생활의 여유, 가족과의 시간, 전원생활을 찾아 덜컥 사표를 내고, 무작정 아이들과 함께 제주로 향한다. 2010년엔 불과 3~400명이던 제주 이주 인구가 꾸준히 늘어 올해는 상반기에만 5천 명이 넘었다니 이제는 우리 세대의 제주 이민이 유행을 넘어 하나의 현상이 되고 있는 것도 같다.

 

대체 제주에 뭐가 있길래...?

시어머니의 환갑을 기념해 14명의 대가족과 함께 떠난 제주여행, 고작 3박 4일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랜만에 각박한 현실을 떠나 아름다운 제주와 서로에게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어렴풋하게나마 도시에서 느끼지 못했던 해방감과 여유를 맛보며 왜 많은 사람이 제주에서 또 다른 비전을 찾고 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사실 우리 가족도 제주 이민을 꿈꾸고 있었기에, 더 많이 느끼고 이야기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언제나 즐거웠다고, 답을 찾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일상과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가까이 부대끼다보니 조금 더 서로를 인정하게 되었다. 삐걱거림마저도 깨달음이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Day 1    김포-제주-성산 일출봉-우도




AM 7시 35분 (아침이라 쓰고 새벽이라 읽는다.), 오랜만에 타보는 국적기로 제주에 도착했다.
일정 내내 비 소식이 있어 떠나기 전부터 걱정이 많았지만, 다행히 보슬비가 살짝 흩뿌리는 정도로 그쳐 청량한 제주의 아침 공기를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이자 제주 10대 절경 중 으뜸으로 꼽히는 성산 일출봉

첫 여행지는 성산 일출봉~! 10만 년 전 제주에서 생겨난 수많은 분화구 중 유일하게 바닷속에서 폭발해 만들어졌다는 이곳은 제주 10대 절경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곳이다. 비 갠 성산 일출봉에는 살짝 안개가 끼어있었는데, 이끼처럼 자라난 나지막한 나무들로 뒤덮인 초록의 절벽은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느낌이었다.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이라 그런지 초입부터 외국인들로 북적이는 모습이 뿌듯했던 곳.

 

산책로를 오르는 가족을 뒤로하고 아가 둘과 엄마 둘은 차에 남기로 했다. 위쪽으로 갈수록 언덕이 가팔라져 어린아이들과 함께 오르기엔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답답해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 산책을 나섰다. 한달음에 돌하르방으로 달려가는 둘째군. 다짜고짜 하르방의 코를 가리키며 놀이를 시작한다.

 "코코코코~ 눈!" "코코코코~ 입!" 

 


가족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려 향한 다음 목적지는 이번 제주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우도'~!


바다 한가운데 우도의 상징인 빨간 등대가 손에 잡힐 듯 다가오니 왠지 내 가슴도 두근두근.

 

▲ 버스투어 첫 코스인 우도봉, 높이는 133m밖에 되지 않지만 절벽과 어우러진 푸른 바다의 모습이 환상적이다.

우도에서는 '버스투어'를 하기로 했다. 우도에서 나고 자란 운전기사의 구수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버스투어는 '우도봉 - 검멀레동굴 - 하고수동해수욕장 - 서빈백사' 총 네 코스를 도는 정기순환 관광버스다. 마치 서울의 시티투어 버스와 같은 시스템으로 한번 티켓(5,000원)을 끊으면 언제고 해당 정거장에서 내렸다 탔다 할 수 있다. 우도 관광을 계획하는 이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코스~!

 

▲ '검은 모래 해안'이라는 뜻의 제주 말, 검멀래 해안

'한국에 이렇게 멋진 곳이 있었다니!'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던 이곳은 화산재로 인해 모래가 검어졌다는 '검멀래 해안'이다.

▲ 버스기사의 강력추천! 우도 8경 보트투어

검멀레 해안에서는 꼭 해봐야 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고무보트를 타고 우도 8경을 둘러보는 '보트투어'다. (성인 10,000원, 어린이 5,000원)
처음 우도 관광버스 기사의 추천사를 들었을 땐 우도에서도 '옵션상품'을 파는 것인가?'라는 생각에 좀 씁쓸했다. 

그런데... 그런데... 이게 정말 진짜였다!

태국 푸껫의 '팡아만 투어'를 연상케 하는 보트 투어는 30분 남짓한 시간 동안 고무 동력보트를 타고 우도 8경을 둘러보는 코스로 진행된다.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며 바라보는 우도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 우도에만 있다는 바닷속 동굴의 신비로운 모습을 보며 8경에 얽힌 지질학적 설명과 그에 얽힌 에피소드까지 이야기까지 들으니 정말 우도의 속살까지 모두 본 기분이었다. 잠시나마 버스 기사를 오해한 내가 부끄러워지던 순간. 마침 다행히 같은 기사가 운전하는 순환 버스를 탔기에 특유의 호들갑으로 칭찬에 칭찬을 거듭했다. ^^   

 

 

  Day 2   섭지코지_비자림 (한라산)

 

▲ 한류의 힘이란~! 아직도 드라마 '올인'촬영지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어 외국인, 특히 중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섭지코지' 

둘째 날에는 가족이 두 팀으로 나뉘었다. '다리가 예전 같지 않아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며 한라산 정상 등반을 원하시는 시부모님과 의전을 담당할 아들들 한 팀, 그리고 나머지 어른과 아이들이 또 한팀이 되었다. 아~ 그런데, 이것이 고난의 시작이 될 줄이야~! ㅠㅠ 평소 두 아이와의 여행은 자주 다녀봤어도, 여러 명의 아이들을 한꺼번에 돌보는 것은 처음이라 참 고생을 많이 했다. 밀폐된 차 안에서 한 아이가 울면 다른 하나가 따라 울고... 하나를 달래면 다른 하나가 샘을 내 더 크게 우는 식. 첫날부터 이른 새벽에 일어나 강행군을 했으니 아이들의 컨디션도 말이 아니었다. 차라리 숙소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3박 4일의 짧은 일정을 이렇게 보낼 수 없다'는 굳은 의지로 섭지코지와 비자림 등을 간단하게 둘러봤다. .

 


▲ 아이가 울어도 아름다운 풍경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섭지코지 오르는 길에 내려다본 우도 앞바다


▲ 곳곳에는 이렇게 잘생긴 제주 말을 타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좀 큰 아이들은 한 번쯤 체험해 봐도 좋을 듯.



▲ 한라산 정상 등반팀이 보내온 자랑스러운 조카의 사진. 비가 많이 와 만수가 된 백록담이 아주 근사하다.


  Day 3   쇠소깍-정방폭포-오설록 뮤지엄

 

▲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 보전지역, 청정 쇠소깍의 아름다운 풍경

오후부터 비가 내린다는 기상청의 예보로 서둘러 쇠소깍으로 향했다. 제주의 유명한 관광지들이 대부분 깎아지른 절벽과 녹음, 바다가 어우러진 탁 트인 풍광을 자랑한다면 쇠소깍은 좁은 계곡에서 풍기는 신비로운 기운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현무암에 정수된 하천과 바다가 만나는 곳이라서 그런지 물속이 훤히 들여다 보일 만큼 깨끗하고, 다양한 동식물이 살고 있어 유네스코 지정 생물권 보전지역이 되었다고 한다.

 

원래 맑은 날에는 바닥이 투명한 카약을 타고 물속 풍경을 보며 신선놀음을 할 수 있다는데, 안타깝게도 이날은 날이 흐려 카약을 띄울 수 없었다. 가족과 근처 해안까지 나가 물 수제비 뜨기 시합을 한판 벌이는 것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 오설록 티 뮤지엄 앞 녹차밭


종일 하늘이 흐리더니 결국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비오면 좋은 제주 여행지를 물색하던 중, 페이스북에서 추천받은 '오설록 뮤지엄'에 가기로 했다. 안개낀 녹차 밭은 평소보다 훨씬 운치 있다기에.

▲ 이니스프리 제주하우스, 천연비누 만들기 체험장

과연, 선택은 옳았다. 게다가 오설록 뮤지엄에서 조금만 위로 올라가면 새로 개장한 '이니스프리 제주하우스'를 만날 수 있는데, 이곳에서는 비 오는 숲 속의 풍경을 통창으로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자연이 그대로 보이는 실내에서 힐링음악을 들으며 천연비누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어 아이들에게도 인기 만점~!


 

Day 4   집으로...


 

준비과정부터가 그랬지만 대가족, 특히 아가들이 많은 대가족 여행은 참 어렵다. 특히 이번에는 부모님의 환갑을 겸한 여행이었고, 나는 제주 이민에 대한 고민을 겸하기도 했기에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일정을 계획할 수 없어 더 힘이 들었던 것 같다. 서로에 대해 많이 배우고 다름을 인정하기도 한 시간. 이런 기회도 가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 멘붕의 아침. 아이들이 많으니 아빠가 아이들을,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챙기는 훈훈한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 사흘 동안 14명의 대가족이 먹고 마신 음식들. 도시보다 가격은 제법 나갔지만 제주 특유의 향과 맛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중 가장 만족스러웠던 식사는 '모듬회' 한 상. 
육지에서는 한 접시에 꽤 비싼 값으로 팔렸을 활전복, 문어 같은 귀한 음식도 기본 찬으로 곁들여 푸짐하게 즐길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아이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대뜸 '바이크'란다. 
역시 예측불허, 아이들의 세계~! 제주의 풍경보다 사촌오빠, 고모부와 함께 보낸 즐거운 시간이 더 기억에 남나 보다.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에게 감동을 줬던 이 한 장의 사진.
남편이 기획하고 디자인한 이 플래카드는 어디든 가지고 다니며 가족 단체 인증샷을 찍을 때 사용했다.
처음에는 다른 이들의 시선이 느껴져 쭈뼜거렸지만, 두세 번 해보니 이제는 플래카드만 꺼내 들면 알아서 자리를 잡는 가족들.
어머님께서 평생 꽃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는 아들의 마음처럼 훈훈했던 제주 나라에서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다음 여행은 아가들이 좀 크면 가는 것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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