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스칼렛 핌퍼넬'과 함께했던 조금 특별한 결혼기념일
- 라이프 로그
- 2013. 7. 19. 07:30
이제는 몇번째인지 헤아려봐야만 알 수 있는 결혼기념일.
프라하 가이드북으로 청혼을 받던 그날의 설렘은 희미해진지 오래고, 생활의 중심에는 어느새 우리보다 더 아이들이 더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든든하고 안심이 되는... 결혼 8년차 부부는 그런 사이인것 같다.
8년이라는 시간이 대단히 긴 세월은 아니지만, 그래도 인생의 달고 쓴 맛을 함께하며 곁을 지키고 있음에 감사하며,
지난 세월, 나를 한결같이 이해하려고 애써온 남편에게 고마움을 전하고자 올해는 작은 이벤트를 하나 마련했다.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 비록 프리뷰 초대권으로 마련한 이벤트이지만, 마침 기념일 당일 티켓이라 오랜만에 둘만의 데이트를 즐길 수 있었다.
아이들은? 죄송하지만 잠시 어머님께 맡겨두고... 다행히 흔쾌히 허락해 주시고, 먼 거리 마다않고 달려와 주셔서 가벼운 걸음으로 나설 수 있었다.
'숨겨진 비밀, 그 안의 위태로운 사랑', 강렬한 인상의 포스터만큼이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기대되는 스칼렛 핌퍼넬~!
박건형, 박광현, 한지상의 트리플 캐스팅, 그리고 김선영, 바다, 양준모 등의 화려한 배우들이 주연으로 발탁되며 화제가 되기도 했었던, 바로 그 뮤지컬.
오늘의 캐스팅은 지난 3월에 본 '살짜기 옵서예'에서 '애랑'역을 맡았던 김선영(마그리트)과 얼마전 막을 내린 '지킬앤 하이드'에서 지킬이자 하이드였던 양준모(쇼블랑), 그리고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로 낯익은 훈훈한 박광현(퍼시)이다. 특히 TV에서만 보던 박광현이 주인공 퍼시역을 어떻게 소화할지가 무척 궁금하고 기대가 되었다.
▲ 공연중 촬영이 어려워 아쉬운 마음에 주요 장면과 노래를 담은 프레스콜 영상을 하나 찾아봤다. 영상으로 다시 보니 그때의 감동이 새록새록~
스칼렛 핌퍼넬은 브로드웨이에서 1997년에 초연된 뮤지컬로 헝가리 귀족 출신 영국 소설가 바로네스 오르치의 희곡이 원작이다. 영국에서는 2,000회 이상 연극으로 공연됐고, 영화화만 12번, TV 드라마로도 6번 만들어지는 등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고전이라고. 프랑스 혁명 시대에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이중생활을 하는 영국 귀족 ‘스칼렛 핌퍼넬’과 그와 대립하는 강렬한 카리스마의 ‘쇼블랑’, 그리고 두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이지만 첩자라는 오해를 받게 되는 아름다운 ‘마그리트’ 의 비밀과 사랑이 주요 내용이다.
사실 스칼렛 핌퍼넬은 한국에서 초연이기에 제목만 듣고는 좀 생소했더랬다.
국내 내로라하는 뮤지컬 스타들이 대거 캐스팅되었고, 원작의 무거운 내용을 한국 관객들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CJ E&M에서 대본 작업에만 2년을 투자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시대물, 영웅물인 탓에 비슷한 배경의 '삼총사'나 '레미제라블' 등를 어렴풋이 떠올리는 것 외에는 딱히 그려지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공연을 보다보니 흘러나오는 음악들이 죄다 낯익다. '이 노래가 스칼렛 핌퍼넬 삽입곡이었어?'라는 생각이 드는 곡이 한 두곡이 아니다. 알고보니 '지킬앤하이드'로 우리나라에서 특히 사랑을 받는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 혼의 곡이더란. (궁금하다면 Story book, You are my home, Into the fire 등 위 동영상 속 노래를 한번 들어보시라~!)
소름끼치도록 풍부한 배우들의 가창력, 화려한 무대와 의상, 쉴새없이 빵빵 터지는 유머코드, 영웅 핌퍼넬 뿐만 아니라 프랑스 공포정치의 핵심으로 그려지는 쇼블랑마저 로맨틱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어느새 나는 여주인공 마그리트에 감정이입이 되어 스토리 속으로 완전 몰입해버렸다. 특히 낮에는 사치스러운 한량, 밤에는 영웅으로 변신하는 퍼시의 매력에 푹 빠졌다. 쉴 새 없는 퍼시의 농담, 친구들과 함께 벌이는 우스꽝스러운 소동극에 3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
물론, 극의 가장 많은 부분을 비중있게 이끌고 있는 퍼시(핌퍼넬)역의 박광현이 고음 부분에서 살짝 아슬아슬 할 때도 있었지만 너무나 사랑스러운 마스크를 가진(개인적 취향일 수도 있겠지만 ^^;) 연기력 있는 배우이기에 그닥 흠이 되지는 않았다. 무고한 시민들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혁명의 시기, 그들을 구출해내는 재기발랄한 영웅의 모습에 박광현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극 전반에 흐르는 우울하고 비장한 정치적 배경 탓에 자칫 무겁고 진지한 작품이 될 수도 있었을 거다.
그러나 로맨스와 유머가 내용의 핵심을 이루며 뻔한 영웅담이 더욱 매력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어찌 보면 결혼기념일에 정말 잘 어울리는... 그런 공연이기도 했다.
현실속에서 맞닥드리는 문제들은 어떻게든 풀어야 할 숙제다.
그렇다면 조금 더 유쾌하게, 조금 더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때로는 철없는 바보처럼, 때로는 정의로운 영웅처럼 말이다.
스칼렛 핌퍼넬보다는 조큼 덜 멋지지만 그보다는 훨씬 현실적이고 이해심 많은 지원군이 곁에 있으니 나는 마그리트가 부럽지 않다. ㅎㅎ ^^
[공연 정보] 스칼렛 핌퍼넬 (Scarlet Pimpernel)
* 기간: 2013.07.02 ~ 2013.09.08
* 장소: LG아트센터
* 출연: 박건형, 박광현, 한지상, 김선영, 바다, 양준모, 에녹 등
* 만 7세이상 / 1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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