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 노을을 따라 걷다, 대부도 해솔길
- 센티멘탈 여행기/한국 구석구석
- 2013. 8. 27. 11:39
여름휴가를 모두 써버린 사람들에게 요즘은 슬슬 몸이 근질거릴 때이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끈적한 더위가 가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부는 지금이야말로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돌아오는 추석은 주말과 맞붙어 있는 황금연휴~!
가을여행을 결심한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대부도 해솔길 1코스, 바다소리 해안둘레길
주말 도시 탈출이든, 추석 노동 끝의 힐링여행이든 상관없다.
짧은 기간 동안 가장 완벽하게 일상에서 멀어지는 방법은 전혀 새로운 환경을 만나는 것.
그곳이 '섬'이라면 더욱 좋다.
수도권에서 한두 시간 거리에 있는 가까운 섬, 그래서 하루 나들이로도 섬의 낭만과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
육지와 연결되어 있어 드나들기 편하기까지~! 이보다 더 완벽한 주말 여행지가 어디 있을까?
썰물이면 드러나는 드넓은 갯벌, 지는 해를 바라보며 걷는 섬의 둘레길,
푸짐한 제철 해물에 해풍 맞고 자란 포도까지 가을이면 볼거리, 먹거리가 넘치는 곳.
바로 도심 가까이 있는 숨은 명소, 안산 '대부도' 이야기다.
바다전망 공원에서 특별한 휴식을, T-LIGHT 휴게소
서울에서 대부도로 가는 길목, 시화방조제를 따라 달리다 보면 최근 지은 듯한 깔끔한 휴게소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겉보기에는 주전부리를 파는 평범한 휴게소인데, 주차장에 차 댈 곳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
이상한 것은 정작 휴게소 내부에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다 어디에 있는 걸까.
사실 여기는 휴게소라기보다는 차라리 '공원'이란 이름이 어울리는 곳이다.
T-LIGHT 휴게소 뒤편으로 펼쳐진 탁 트인 바다 풍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후련해지는 기분.
실제로 15만㎡ 의 넓은 부지에 휴게소, 산책로, 빛의 오벨리스크 기념탑, 바다전망광장 등이 조성되어 있어 일부러 T-LIGHT 휴게소를 찾아 나들이 나온 사람들도 많다.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만 내달려도 이렇게 멋진 바다를 만날 수 있다니~!
대부도 앞바다의 푸짐한 제철 해물 밥상
본격적인 대부도 여행을 떠나기 전에 섬 초입의 한 횟집에서 제철 해산물로 든든하게 배를 채워 본다.
"오늘 아침에 잡은 거에요~"
망둥이 매운탕을 내어 놓으며 자랑스럽게 말씀하시는 사장님.
자부심 때문인지, 대부도 앞바다의 기운이 느껴지는 시원한 국물이 일품이다.
아직도 한낮 기온은 30도를 오르내리고 있지만, 처서가 지나니 가을은 가을인가 보다.
이제 막 살이 오르기 시작한 가을 전어를 한 입 베어 무니 달큰한 맛이 난다.
이런 자리에 막걸리 한잔이 빠질 수 없지~!
솔솔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맛있는 제철 해산물을 즐기니 이게 바로 힐링이 아닌가 싶다.
바닷물에 발 담그고 노을 따라 걷다, 해솔길
갯벌과 염전, 승마장에 와이너리까지 갖춘 대부도에는 즐길 거리가 많지만, 그중 으뜸은 솔 향기와 바닷내음이 있는 해솔길을 걷는 것이다.
해솔길은 해안선을 따라 걷는 7개의 코스가 있는데, 전체 길이는 총 74km에 이른다.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구봉도의 낙조를 볼 수 있는 1코스(11.3km)와 중생대 백악기 해안절벽이 있는 6코스(6.8km)다. 특히 해안 둘레를 따라 걷는 1코스는 오르내림이 적어 걷기에 부담이 없고, 경치가 멋지기로 유명해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대부도에서 가장 멋진 곳이라니, 1코스 중간 즈음인 종현어촌체험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할매, 할아배 바위를 지나 개미허리, 낙조전망대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해넘이 명소라는 명성에 걸맞게 곳곳에는 삼각대를 펼쳐 든 사진사의 모습이 눈에 띈다.
햇살에 물들어가는 바다를 감상하며 잘 닦인 섬의 둘레길을 걷는다.
그런데... 어디선가 조금씩 물이 넘쳐 해안 산책로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리저리 피해보지만, 어느새 발목까지 차오른 바닷물.
알고보니 오늘은 사리에 만조. 밀물에 바닷물이 가장 높게 차오른다는, 1코스의 개미허리 가는 길이 완전히 잠긴다는 바로 그 날이다.
이정도 빠른 속도로 물이 차오르면 대피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주변에 물으니 무릎 이상으로는 차오르지 않는다는 말에 조금 더 가보기로 했다.
결국 나는 신발과 양말을 벗어 들고 바지를 걷어부쳤다.
산비탈에 신발을 올려두고 카메라를 집어드니 한결 가벼운 느낌이다. 내가 올려둔 것은 비단 신발 만이 아니리라.
들물의 조류가 세 파도도 제법 쳤지만, 감성의 온도가 조금 올라간 나는 멀리 주홍빛 석양응 향해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가까이 보니 썰물 때는 뿌리까지 모습을 드러냈던 할매 바위가 이제는 머리만 간신히 드러내고 있다.
대자연과 멀리 보이는 송전탑과의 조화가 아이러니하다.
바다 위를 걷는 사람들.
연신 바지를 걷어도 파도에 젖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무언의 눈빛과 웃음을 나누며 이들과 함께 젖어보기로.
조금은 멍한 기분으로 스러져가는 태양을 보고 있노라니 '내가 보고 있는 이것이, 지금이 과연 현실일까?'하는 생각이 든다.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몸 담근 바다, 내려 놓으니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노을, 당황스럽지만 받아들이니 오히려 즐거운 현실.
세상사는 이치가 다 이렇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지금 내가 서있는 이곳은 해넘이 명소인 변산반도도, 태안반도도 아닌 안산의 대부도
가까운 곳에 이렇게 보물같은 장소가 숨어 있었다니,
올 가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다시 이 길을 걸어보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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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지원: 하나투어, 안산시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