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오일장, '안산 시민시장' 100배 즐기기

사실 '안산'은 그동안 여행지로 특별히 주목받은 곳이 아니다. 
더욱이 내게는, 시집이 있어 자주 찾는 곳이라 '여행지' 보다는 '주거지'에 가까운 곳이었다.
그래서 '안산 여행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을 때, 조금은 망설였던 것 같다.


화랑유원지 내 청정 지역인 '갈대 습지'와 울창한 연잎 밭이 인상적이었던 '경기도 미술관'을 둘러볼 때만 해도
'주변에 이런 깨끗한 공원과 문화시설이 있으면 참 살기 좋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정도였다. 
그런 내가 안산을 '진짜 여행지'로 받아들이게 된 장소가 있었으니, 그곳은 의외로 어느 동네에나 있는 '시장'이었다.

도심 속 오일장, 안산 시민시장



여행 중 재래시장 구경만큼 재미난 게 또 있을까?

그 지역에서 주로 나는 제철 농수산물과 즉석에서 만든 푸짐한 장터 먹거리들은 여행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각지에서 모여든 장사꾼과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동네 오일장은 그 자체로 대단한 볼거리. 요즘은 재래시장도 '현대화 사업'이라는 명목 아래 획일화되어 어느 동네를 가도 똑같은 형태의 건물과 시장의 모습이지만, 놀랍게도 도심 한복판인 이곳,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의 '시민시장'에서 옛 오일장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안산 시민시장의 역사는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산에 주공아파트 단지가 처음 생기기 시작했을 때, 자연스럽게 아파트 주변으로 모여든 상인들이 상설시장인 '라성시장' 근처에 노점 시장길을 만들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활성화되던 노점 시장의 길이는 무려 3~400미터. 하지만 좁은 인도에 노점상까지 늘어나니 주민들의 불편이 심해졌다. 안산시에서는 고민 끝에 초지동 넓은 터에 공설시장을 마련하고 1997년, 노점 상인들을 이주시켜 현재의 시민시장을 열었다. 


요즘의 안산 시민시장은 오일장이다. 매달 5, 10, 15, 등 날짜의 끝자리가 5나 0으로 끝나는 날에는 흩어졌던 상인들이 예전처럼 물건을 수북이 쌓아놓고 장터를 연다. 장날이 주말과 겹치면 장이 더 커지고 찾는 사람도 많다. 운좋게도 우리가 시장을 찾았던 날이 바로 그날~! 때를 놓칠 수 없어 시장 구경에 나섰다. 그리고 그곳에서 안산의 숨은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도심 속 5일장, 안산 시민시장 100배 즐기기


1. 오감으로 즐기는 제철 먹거리 


▲ 일반마트에서 보던 것의 두 배쯤 알이 굵은 제철 복숭아, 양도 어마어마하다.

여름은 꼭 계곡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잘 익은 복숭아와 포도에서도 싱싱한 늦여름의 기운을 듬뿍 느낄 수 있다. 계절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이 재래시장이다.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이내 아오리 사과의 자리는 홍로가, 복숭아의 자리는 감과 배가 채운다.  


▲ 시민시장에서는 질 좋은 대부도 포도를 맛볼 수 있다. 혹자는 대부도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다고도 한다.


▲ 요즘은 통통하게 살 오른 꽃게가 제철이다.

바다 생물에도 제철이 있다. 요즘은 금어기가 풀려 살이 통통하게 오른 꽃게가 출하되는 시즌. 냉장과 냉동이 어려운 탓에 물건은 신선함이 생명이다. 그래야만 요즘같이 변화무쌍한 날씨에 하루 장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의 물건과는 선도, 크기, 가격 면에서 모두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양이 너무 많다. 저걸 과연 다 팔기나 할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수북하게 쌓인 물건들, 하지만 그만큼 오가는 사람도 많다.



▲ 말린 고추와 마늘을 보며 이른 가을을 느낀다.

 


2. 예술가의 작품 부럽지 않은 자연의 조화


생전 처음 보는 활기찬 시장 풍경에 두리번거리며 길을 걷던 중이었다. 문득 내 시선을 끄는 좌판 하나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색색의 고추들. 크기가 일정한 바구니에 울긋불긋한 고추와 흰 마늘, 황톳빛 생강 등이 담겨있는데, 그 색들이 어찌나 조화로운지 예뻐서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의 조화도 멋있지만 가지런하고 소복하게 담긴 채소의 차림새가 상인의 마음을 담아놓은 것 같아 참 보기 좋았다.



빨간 팥, 누런 현미, 흰 찹쌀, 검은 흑미 등 곡물 가게에서 보는 채도가 낮은 색의 조화도 아름답다.




시장을 보는 내내 우리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던 파라솔의 색도 예사롭지 않다. 세월의 흔적이 배인 올이 성긴 파라솔이 햇빛에 더욱 빛난다.  


3. 도전! 시민시장 먹부림 베스트

어느 정도 시장을 둘러봤다면, 이제 여행자의 신분으로 돌아올 때이다. 주렁주렁 장을 봐서 양손이 무겁기 전에, 이름난 먹거리들을 한번 맛봐야 할 것 아닌가? 시장구경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군것질~! 시민시장에서는 뭘 먹어야 할까?

① 심봉사 찹쌀 도너츠


가장 먼저 들러야 할 곳은 시장 초입의 '심봉사 찹쌀 도너츠'.
'맛이 좋아 심 봉사도 눈 뜬 집'이라는 재미난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집은 즉석 도넛 가게이다.

 


도넛을 반죽해 넣자마자 사람들이 줄을 서고, 시식용 도넛은 잘라 놓기가 무섭게 동난다. 그만큼 맛이 있다는 얘기다.

 

달콤한 팥이 들어있는 찹쌀 도넛은 바삭할 때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 찹쌀 넙데기 도너츠와 찹쌀 도너츠는 3개에 2,000원. 

 

② 기본안주 무한 공짜, 1,000원 막걸리

 

도너츠로 출출한 속을 달랬다면, 이제는 시민시장의 명물, '천원 막걸리'를 만나러 갈 시간. 
이 집은 찾기가 어렵지 않다. 시장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있는 곳을 찾으면 되니까. 절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사실 재래시장에서 막걸리 잔술을 파는 것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보통 한잔에 천 원씩 한다. 그런데 무엇이 이렇게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걸까?
비결은 '기본 안주'에 있다. 일단 상에 놓여있는 기본 찬이 콩나물, 가지, 호박, 무나물 등 나물 무침 네 가지다.
여기에 돼지 껍데기와 허파 등 부속물 볶음 등을 배가 부를 때까지 무제한 추가로 먹을 수 있다. 혹시 막걸리에는 '부침개'라는 확고한 안주관이 있다면 굳이 2,000원을 내고 셀프로 부쳐 먹을 수도 있다.



천원짜리 막걸리 한 잔에 이렇게 안주를 퍼주는데, 대체 남기는 하는 것일까? 막걸리는 맛이 있을까? 궁금한 마음에 일단 한 잔 시켜보기로 했다. 
일행과 좁쌀 막걸리와 일반 막걸리 한 잔씩을 주문하고, 주변을 커닝해 반찬도 몇 가지 담아 먹으며 정겨운 시장 분위기에 취해본다. 일단 시원하고 구수한 맛이 합격~! 둘러보니 나이 지긋한 어르신부터 우리 같은 젊은(?) 처자까지 연령대도 참 다양하다. 처음 보는 사이이지만 옆자리라는 인연으로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자연스럽다.  

③ 그 밖의 먹거리들
 


시장 먹거리를 논할 때, 닭튀김을 빼놓으면 섭섭하다. 닭 한 마리를 통째로 튀긴, 그 이름도 정직한 '통닭'!
얼핏 보면 익숙하지 않은 생김새에 고개를 돌리게 되지만, 가위로 몇 번 쓱쓱 잘라내면 바삭바삭 먹음직한 국민간식, '치킨'이 된다.
게다가 놀라운 가격과 푸짐한 양이 놀랍다. 시장 통닭은 3마리에 만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어도 부족함이 없는 양이다.  



어마어마한 양의 족발을 포장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에서는 또 커다란 솥에 고기를 삶고 있는 이 집. 쫄깃하고 야들야들한 돼지 족발은 대자가 17,000원이다. 
치킨과 족발은 시민시장의 필수 테이크아웃 메뉴 되시겠다.

 

시장 음식치고는 고가인 민물장어도 있다. (한마리 10,000원) 상에서는 지글지글 장어가 익어가고, 그걸 그냥 지나치지 못한 할아버지 몇 분이 좌판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장어 한 점에 소주 한 잔을 걸친다.


4.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시장 속 숨은그림 찾기


시민시장에는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사진 속 이 물건은 대체 무엇일까? 정답은 쪽파 씨.
대파는 작은 씨앗을 심지만 상대적으로 가는 쪽파는 이렇게 큰 구근으로 싹을 틔운다. 가을 김장철이 다가오자 시장에는 배추 모종에서부터 가을에 파종하는 각종 씨앗이 등장했다. 가을에 파종하는 씨앗이라니. 시장에서 신비로운 자연의 세계를 배운다.

 


약재상에나 가야 볼법한 영지버섯, 헛개나무, 황기 등도 보인다. 식혜를 만드는 엿기름과 도토리묵을 만드는 도토리가루, 술 담글 때 쓰는 누룩까지. 정말 이 시장엔 없는 게 없는 것 같다.

 

별것이 다 있다 싶더니 무화과와 말린 번데기, 살아있는 다슬기도 있다.


 

5. 정겨움이 가득한 진짜 시장

 

 

7일을 일주일로 여기지 않았던 옛날사람들은 오일장이 열리는 장날을 휴일로 여겼다고 한다. 장이 서는 날에는 씨름이나 놀이판이 벌어지기도 했단다. 
장날이 바로 동네 축젯날이고, 사람을 만나는 날이자, 동네 처녀 총각들이 눈맞는 날기도 했다.

 

 

대형마트는 물론 요즘 현대화된 재래시장에서는 볼 수 없는 정겨운 옛 풍경이 이곳에 있다. 엿장수 노랫가락에 웃음 짓고, 막걸리 한잔에 흥겨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저 보고만 있어도 즐겁다. 익숙한 솜씨로 척척 과일을 쌓아나가는 상인들과 신중하게 물건을 고르는 할머니, 핫도그에 뿌린 케첩을 핥아 먹으며 엄마 손에 이끌려 다니는 아이의 모습에서 나와 내 아이의 모습을 찾기도 한다. 꼬불꼬불 미로 같은 시장통, 그 속 얽혀있는 사람 사는 모습. 이것이야말로 안산 시민시장의 매력이 아닐까?

여행을 마치며 나는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인절미 한봉지를 포장했다.
다음에는 당신의 손을 잡고 도너츠도 한 입, 막걸리도 한 사발 건네드리며 살갑게 이 길을 걸어봐야겠다. 

 

 

[여행 Tip] 안산 시민시장

주소: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604-4번지 (지하철 4호선 초지역 1번출구)
전화번호: 031-411-1040

주차장: 시민시장 내 300대 동시 주차가 가능한 대형 무료주차장이 있다.
홈페이지: http://www.ansanmarket.co.kr/

 

* 취재지원: 하나투어, 안산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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