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가족 모임엔 특별한 한정식, 청담 다담(茶啖)

나이가 들고, 가족을 이루면 챙겨야 하는 사람도 늘고, 치러야 하는 행사도 많아진다.

상견례로 시작된 가족모임은 백일, 돌, 생신, 환갑, 회갑 등으로 이어지며 결혼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고민을 하게 한다.


가장 어려운 것이 가족 모임 장소 선정. 

'누가 가족모임 하기 좋은 곳 리스트라도 만들어두지 않았을까?'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보지만, 딱히 성에 차는 곳이 없다.   

뷔페식당 말고 좀 더 프라이빗하고 고급스러운 공간은 없을까? 

어른과 아이의 입맛에 모두 잘 맞는 곳은? 

내 가족이 먹을 음식인데 원산지도 봐야지. 

그렇다고 가격이 너무 비싸면 곤란한데.


아마 그래서 가족모임엔 매번 같은 곳을 향하게 되는 것 같다.



특별한 날 어울리는 한정식집, 다담


사실 이 날은 가족모임을 하러 간 건 아니었다. 모임 장소가 청담동이고, 한식을 먹는다는 것만 알고 출발했다.

부쩍 서늘해진 날씨에 촉촉이 가을비가 내리는 그런 날이었다. 



사대부 안채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


그런데 들어서는 계단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돌계단을 총총히 내려가면 멋스러운 자갈길이 나오고...



문을 여니 마치 사대부의 집이라도 되는 듯 수 많은 방이 나타났다.  



방에는 저마다 '태백산', '덕유산', '남산', '용두산' 등 한국의 명산 이름들이 걸려 있는데, 살짝이 틈으로 은은하게 볕이 드는 창호도 보였다.
알고 보니 이곳은 조선 시대 사대부 주택인 강릉 선교장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곳으로 문화관광부에서 선정한 '한국적 스타일 우수공간'이기도 하단다. 16개의 크고 작은 방에는 저마다 2개의 출입구가 있는데, 직원과 고객이 다른 문을 통해 드나들어 최대한 외부에 방해받지 않는 식사를 할 수 있다고. 



예약된 방으로 들어서니, 자리에는 금사 자수가 새겨진 모시 냅킨과 유기 수저 한 벌이 놓여 있었다. 갈수록 기대를 하게 하는 정갈한 세팅. 



정갈한 '식전 먹거리'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리며 귤과 고구마, 다시마, 대추 등을 바싹 말려 만든 천연 과자로 주전부리를 시작했다. 


식사의 시작을 알리는 죽과 동치미. 특히 동치미는 깊고 시원한 맛에 체면 불고하고 몇 그릇을 비워냈다.


보는 즐거움이 있는 '먼저 먹거리'


▲ 얇게 썰어낸 버섯과 김, 소고기를 살구소스에 버무려 낸 청포묵 무침 (단품 22,000)

▲ 전복, 문어, 소라, 한우 등이 어우러진 해산물과 콩나물 냉채  (단품 30,000)

서양의 전채음식에 수프와 샐러드가 있다면 한국에는 죽과 나물 무침이 있다.
다담에서는 이것을 '먼저 먹거리'라고 이름 붙였는데, 소박하고 아름다운 이름만큼이나 요리며 그릇이며 담김새까지 과자하지 않되, 그러나 정성스럽고 세심한 손길이 느껴졌다. 


▲ 가을 한정 메뉴, 홍시 더덕 냉채  (단품 22,000)



음식이라기 보다는 예술작품에 가까웠던 홍시 더덕 냉채는 가을시즌에만 내는 다담의 특별 메뉴란다.

맨 위부터 더덕, 미나리, 당근, 버섯과 한우, 숙주를 켜켜이 쌓아 홍시 소스를 뿌리고, 그 위에 식용 꽃으로 장식해 보는 즐거움을 더했다. 



섞고 비비는 한국의 음식문화를 일컬어 융합의 문화라 했던가? 

다담의 먼저 먹거리인 청포묵과 콩나물 냉채, 홍시 더덕 냉채 등의 공통점은 이렇게 그릇의 모든 재료를 과감하게 섞어 먹는 것이다. 

낱낱의 재료로도 물론 훌륭하지만 섞으면 서로가 시너지를 내 영양도, 맛도 배가 된다.



구이에도 품격이 있다. '구이 먹거리'



냉채류를 먹고 나니 쌈채와 장, 절임 등이 놓인다. 참숯이 얹어지는 폼이 뭔가 구이음식이 오르려는 듯.

▲ 한우 꽃등심, 꽃살, 채끝등심(각 40,000 ~ 45,000/150g)

왼쪽부터 뽕잎을 먹인 1++ 한우 꽃등심, 꽃살, 채끝등심이 각종 버섯, 채소와 함께 올라왔다.
소고기 등급은 여러 종류가 있지만, 한우는 1++가 최고 등급이라는 걸 아시는지? 
와~! 그래서 그런지, 마블링이 예술이다.



이런 좋은 고기는 참숯에 한쪽 면에 한 번씩만 뒤집어 미디엄 레어 상태로 먹으면, 바로 입에서 살살 녹는 그런 맛을 느낄 수 있다.

 



점심이었지만, 좋은 고기가 있으니 어찌 맥주 한잔 하지 않을 수 있으리~ ㅎ



계절메뉴, 모둠 버섯 매운탕

▲ 모둠 버섯매운탕 (가을 한정 메뉴, 2인 44,000)

이제 슬슬 식사를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상 한 쪽 구석에서 보글보글 매운탕이 끓고 있는 것이 보였다.
더불어 밥도 한 공기...;

도저히 들어갈 틈이 없다며 국물이나 한번 맛보자는 것이 또 한 그릇.. --;
처음 보는 잎새버섯과 (가운데), 황금 송이, 표고 등 가을을 대표하는 버섯들을 모두 모아 놓은 매운탕은 고기 한 점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깊은 맛이 났다. 6성급 호텔 쉐프 출신이자 사찰음식 명인으로 유명한 총괄셰프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요리.


진지, 냉면


이미 밥을 먹긴 했지만, 고기를 먹었는데 입가심으로 냉면도 맛봐야 한다시며 내온 음식.

메밀 함량이 높은 듯한 평양식 냉면은 심심하면서도 개운한 맛이 좋았다. 

평소 간이 세고 쫄깃한 함흥냉면에 길든 내겐 좀 싱거운 느낌도 없지 않았으나, 양반의 품격이 느껴지는 냉면이었달까~



나중 먹거리




대체 입가심을 몇 번이나 하는 거냐며 호강에 겨운 불평 끝에 만난 정말 마지막 음식.

검은깨 초콜릿, 약과, 두텁떡, 과일, 호박 식혜로 3시간에 걸친 오늘의 대단한 식사는 막을 내렸다.


다 맛있었지만, 검은깨 초콜릿과 두텁떡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앙증맞은 종이 가방에는 수제 과자가 들어있었는데, 작은 것이지만 성의가 느껴져 좋았다.



단아하고 멋스러운 내부 인테리어


마지막으로 내가 식사 한 곳은 이런 분위기의 조금 더 큰 방이었다. 
구이판이 있지만, 충분히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상견례나 가족모임으로 좋을 것 같다.


점심 미팅이나 손님 접대하면 괜찮을 것 같은 작은 방.



구이 메뉴를 먹지 않거나 단품 식사를 하는 사람들을 위한 테이블도 있다. 통창으로 햇살 받으며 식사할 수 있는 구조가 멋스럽다.



맏딸, 맏며느리인 나는 바로 며칠 전에도 부모님 생신 가족모임 장소로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늘 가족의 대소사를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라면, 상견례를 앞두고 있다면, 비즈니스 미팅과 접대가 잦다면 이런 장소 하나쯤 알아두는 것도 좋겠다.
분위기와 서비스도 좋지만 천연재료로 맛을 내는 음식은 싱거운 듯하면서도 입맛을 돌게 하고, 담백한 듯하면서도 진한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사찰음식을 베이스로 한, 그간 쉽게 맛보지 못했던 정갈한 음식이라 더 고급스럽게 느껴지는 건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Tip] 다담(茶啖)

* 주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산대로 445 (청담동), 엠빌딩 지하 1층 (학동사거리 지나 (구)엠넷빌딩)
* 전화: 
02) 518-6161 

* 영업시간: 점심 11:30 ~ 15:00 / 저녁 18:00 ~ 22:00
* 가격: 
점심 정식은 28,000원 부터 / 코스요리는 4만원 부터 15만원 까지 다양하다.
* 메뉴 참고: www.thedadam.co.kr
* 주차: 가능 (발렛)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