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카이 패셔니스타?! 진아의 레게머리 도전기
- 센티멘탈 여행기/필리핀 섬
- 2014. 3. 7. 12:47
방콕의 카오산 로드나 발리의 꾸따비치, 보라카이의 화이트 비치 등 여행자들이 많이 모이는
동남아시아 여행자 거리에는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패션이 있다.
카오산 로드에서는 통이 넓은 피셔맨스 팬츠에 조리 정도는 신어줘야 비로소 여행자가 된 것 같고,
꾸따비치에서는 바틱으로 만든 화려한 싸롱으로 랩스커트를 만들어 입어야 느낌이 산다.
섬 대부분이 해변인 보라카이에서는 비키니와 서핑팬츠가 기본~!
그러나 이들 패션에 기본이 되는 헤어 스타일이 있으니, 그건 바로 레게머리다.
보라카이 거리를 걷다 보면 해변에서 머리를 땋거나 헤나 문신을 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보라카이의 화이트 비치는 진아식 표현으로 '바다 미용실', 보는 그대로 '해변 미용실'인 셈이다.
▲ 보라카이 화이트 비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해변 미용실'
▲ 해변 미용실에서 할 수 있는 헤나 타투는 일주일에서 한 달이면 지워지는 패션 문신이다.
영구문신은 좀 두렵고, 한번쯤 기분을 내 보고 싶다면 헤나 타투로 도전해 봐도 좋다.
▲ 숙소 앞에 있던 마사지샵 겸 미용실
여행 6일 차, 보라카이에 온 지 3일째 되던 날이었다.
쇼핑을 하기 위해 디몰로 향하던 중 진아가 내 손을 잡아끄는 곳이 있었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비치체어가 늘어선 마사지 샵이...?
아니, 가만 보니 그곳은 마사지와 네일아트, 헤어 블레이드를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엄마, 나도 저렇게 머리 땋아줄 수 있어?"
아이와 내가 관심을 보이니 눈치 빠른 미용사가 사진이 잔뜩 프린트된 종이 한 장을 들고 온다.
"진아야, 이런 머리가 하고 싶은 거야?"
끄덕끄덕...
▲ 5년 전, 방콕의 카오산 로드에서 레게머리를 땋던 나. 콘로우 스타일로 머리끝에 색실을 감아 에스닉한 느낌을 냈다.
슬레이트 지붕으로 떨어지는 거친 빗방울을 즐기며 내 나름대로 색실을 조합해 미용사에게 건네며 즐거웠던 추억이 있다.
웃음이 났다.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사실 나도 몇 년 전, 태국여행 중 카오산로드에서 레게머리를 땋은 적이 있다.
당시 난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연휴를 낀 잠깐의 휴가를 즐기고 있었기에 며칠 후면 다시 사무실로 출근해야 했다.
일주일도 가지 못할 머리인 것을 알았지만, 태국여행을 할 때마다 봐왔던 멋스러운 레게머리는 어느새 내게 여행의 로망이 되었다.
마침 스콜이 시원하게 쏟아지고 있었고, 때는 저녁이었다.
비가 오니 맥주를 마시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도 없다는 핑계를 대며 기다려야 하는 남편을 설득했다.
머리를 땋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머리를 하고 나니 마치 내가 진짜 장기여행자라도 된 것 같았다.
그런데... 하룻밤 자고 나니 땋은 부분이 당기고 간지럽기 시작했다.
감는 데 불편한 것은 말할 것 없고, 분명히 물로 깨끗이 헹궜는데 개운하지 않았다.
나흘째쯤 되니 색실로 묶은 머리카락이 부분부분 끊어지기까지 했다.
그렇게 시원할 수 없었다.
▲ 머리에 빗질하는 것조차 싫어하는 엄살쟁이.
자신에게 닥칠 수많은 고난을 예감하지 못한 채,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ㅋ
레게머리는 '드레드, 블레이드, 콘로우' 등 여러 가지 스타일이 있다.
남자들은 붙임 머리를 더한 드레드 스타일을 선호하지만, 여자가, 특히 아이가 하기에는 내가 했던 콘로우나 그냥 가늘게 머리를 땋는 블레이드가 적당하다.
스타일북에서 진아가 원하는 모양을 고르게 하니 역시나 블레이드 스타일.
흥정 끝에 우리 돈 만 원 정도에 합의를 봤다.
아무리 7살, 어린이집에서는 가장 큰 형님 반이라고 해도 아이가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은 한계가 있다.
머리를 땋는 데 걸리는 시간을 물으니 다행히 30분으로 길지 않다.
진아를 자리에 앉히니 미용사가 머리에 스프레이를 하고, 길다란 꼬리 빗으로 전체 머리카락을 3등분으로 나눠 조금씩 땋아나가기 시작했다.
▲ 미용사치고는 단출한 연장. 그래도 빗이며 가위, 고무줄 등 있을 건 다 있다.
땋은 머리에 비즈를 붙이면 더 예쁠 것 같았지만, 무게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아 그냥 고무줄로만 묶기로 했다.
대신 핑크색으로 통일해 달라고 부탁했다.
▲ 심각한 미용사, 즐거운 진아, 기다리는 조카들의 표정이 서로 대비되어 재밌다.
주변을 둘러보니 마사지와 페디큐어를 받는 한 여행자가 눈에 띈다.
아이가 머리를 하는 동안 나도 마사지를 받으면 어떨까 잠시 생각하다가 기다리는 가족들이 떠올라 해변 산책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날씨, 거리, 높이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보라카이 화이트 비치의 물빛.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파란색이 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전망을 가진 미용실이 세상에 또 있을까?
산책을 하고 돌아오니 어느새 완성되어가는 레게머리.
거울을 보는 진아의 표정에서 만족도를 읽을 수 있다.
"엄마, 나 아프리카 공주 같아?"
▲ 패셔니스타라면 한번쯤 찍혀줘야 한다는 '파파라치 컷'. ㅋ
봄방학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가 다시 등원할 때까지 머리를 풀지 않겠다던 아이.
하지만 현실은 머리를 땋은 그 날부터 땡볕에 모자도 쓰지 않고 종일 물놀이, 모래 놀이를 하느라 머리 사이사이가 빨갛게 그을려
결국 사흘 만에 풀 수밖에 없었다.
진아의 아쉬움은 '아프리카 공주'시절 사진을 인화해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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