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성을 자아내는 풍경, 보라카이에서 만든 특별한 모래성


보라카이를 뜨겁게 달구던 해가 멀리 수평선 뒤로 사라질 때면 어디에선가 동네 아이들이 나와 해변에 모래성을 쌓기 시작한다. 

삽으로 모래를 퍼와 크고 높게 쌓고 물을 뿌려 손으로 다지는 폼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성 모양을 조각하고, 그 밑에 BORACAY라는 글씨와 날짜를 새겨 넣기도 한다. 

완성된 조각에는 맥주병으로 등을 만들어 조명을 비춘다. 




보라카이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인 ‘모래성’. 

여행을 떠나기 전, 여행잡지에서 처음 이 모래성을 봤을 때는 어느 예술가의 작품이겠거니 했다. 

야외 결혼식이나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 만드는 조각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우리네 얼음조각처럼. 

혹시 내가 보라카이를 여행할 때, 한번이라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보라카이에 도착하니 이 화려한 모래성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매일 저녁, 어떤 날은 하루에 몇 개씩도 눈에 띄었다. 

진짜 모래만으로 쌓은 성이라니! 

거대한 보라카이의 모래성은 쌓는다기보다는 ‘짓는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리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두운 밤 바다를 배경으로 은은하게 불 밝힌 보라카이 성은 그야말로 로맨틱했다. 

첨탑 사이로 흔들리는 불빛이 어우러진 해변 풍경은 사진보다 훨씬 근사했다. 


다음날, 우리는 직접 모래성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머리 위로 태양이 이글거리는 한낮이었지만, 바다 가까이에 자리를 잡고, 더우면 수영도 한번씩 하며 예술혼을 불태웠다. 

화이트 비치의 고운 모래는 물과 섞으면 점토처럼 잘 뭉치는 특성이 있다. 공을 들이면 높이 쌓기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성을 쌓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모래와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들은 장난감 플라스틱 양동이로 수없이 모래와 바닷물을 실어 날랐다. 

해초를 주워와 성 위에 얹거나 장난감으로 장식하는 등 제 나름의 아이디어를 내 치장하기도 했다. 

모랫바닥에 함께 퍼질러 앉아 틀을 잡고 조각하기를 30여분, 드디어 우리만의 모래성이 탄생했다. 


꽤 그럴듯 했다. 

사실 필리핀 아이들의 솜씨를 따라갈 수 없었고 글씨도 비뚤비뚤 했지만, 우리가 직접 만든 모래성이라 오히려 더 정이 갔다. 

사진을 찍기 위해 돈을 낼 필요도 없었다. 

평소 카메라만 들이대면 도망가는 아이들도 이번에는 서로 사진을 찍어달라며 졸라댔다. 






우리는 모래성을 앞에 두고 점프를 하는 등 갖가지 재미난 포즈를 취하며 추억을 남겼다. 

얼마나 법석을 떨었던지, 지나가던 외국인들도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윽고 밀물이 들어왔고, 해가 지기도 전에 성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애써 만든 성이 쉽게 부서지는 모습을 보니 공연히 쓸쓸해졌다. 

하지만, 그 마음도 잠시.

몸에 튜브를 낀 아이들이 달려드는 통에 정신이 차려졌다.




아이들은 알까? 우리가 쌓아올린 것은 비단 모래성 만이 아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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