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쯤, 아이와 스페인] Day 21, 여기는 마드리드 입니다.

오늘은 여행 21일차. 말라가를 떠나 론다, 세비야, 톨레도를 거쳐 마드리드에 3일째 머물고 있습니다.

바르셀로나를 떠난 후로 소도시 위주로 다니다가 마드리드에 도착하니 현대적인 도시풍경이 낯설기만 합니다. 서울 토박이인 저인데, 고작 몇 주 스페인의 작은 마을들을 여행했다고 도시가 낯설다니... 인간은 정말 환경의 동물인가 봅니다.


지난 며칠간의 여정을 간단하게 사진으로 보여드릴게요.



처음 여행을 계획할 때는 스페인 남부 해안 도로인 '코스타 델 솔'을 따라 경치 좋은 곳에서 잠시 내려 수영도 하고, 지중해를 만끽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말라가를 떠나 론다로 향하바다는 커녕 구불구불 험한 산길로 접어들더군요. 해안길을 달리다가 내륙으로 들어서려고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저희 부부는 어리둥절했습니다. 알고보니 내비게이션에서 추천해준 두 가지 경로중 '가장 빠른 길'로 설정을 변경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마치 설악산의 미시령길을 가듯, 아니 그보다 더한 커브가 50m, 100m마다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이런 길을 다른 차들은 대부분 시속 100킬로미터 이상으로 주행한다는 것. 보조를 맞추다보니 쏠림은 기본이고, 앞만 보는 저도 멀미가 날 지경이었습니다. 남편은 자동차의 설정을 '스포츠 모드'로 바꾸고 2시간 남짓 급제동, 급가속을 반복했습니다. 게임 '이니셜디'가 떠오른다며 말이죠..;



알고보니 이곳은 해발 1900m 정도 되는 시에라 데 라스 니에베스(라스 니에베스 산맥).

중간에 국립공원과 트래킹 코스가 있어서 전망대에 올라봤는데, 정말 아찔했습니다. 사진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자연의 웅장함과 두려움을 한 몸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도착한 론다는 해발 750m의 절벽도시였습니다. 하얀 벽과 붉은 지붕을 가진 옛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작은 골목을 만들어 내는 마을로 마치 동화 속에나 등장할 법한 아름다운 자연과 정겨운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저희는 아이들과 함께 작은 마을의 골목을 누비거나 성벽에 오르거나, 혹은 도시락 피크닉을 떠났습니다.




보통 론다는 말라가나 세비야에서 당일치기나 1박 여행 코스로 알려져 있는데요. 스페인 여행지중 론다가 가장 좋았다는 평이 많아 저희는 한 달 일정중 3박이라는 나름 긴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덕분에 유명한 누에보 다리 뿐 아니라, 절벽 아래로 내려가 봄꽃이 만발한 들판을 걷거나 개미집을 관찰하는 등 여유를 부리기도 했고요.


시장에서 산 전통 복장을 하고 투우사로 변신한 진아. 조련사 정균, 아빠는 투우?...ㅎ



1년에 한 번 열린다는 '론다 로만티카'라는 행사를 볼 수도 있었습니다. 이 행사는 마을을 많은 사람들이 18~19세기 전통 복장을 하고, 광장에는 먹거리와 수공예품 등을 파는 시장이 열리는 론다의 가장 큰 축제인데요. 뜻밖에 만난 축제의 하일라이트라는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세비야로 이동하는 날 저녁까지 론다에 머물렀습니다. 



한밤중에 도착한 세비야. 제게 세비야는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세계에서 3번째로 크다는 고압적인 대성당과 현대 문명의 이기가 조합된... 진아의 표현을 빌자면 멋있지만 재미있지는 않은 그런 도시였습니다. 너무 시니컬한가요? ^^; 2박이었지만 실제로 관광에 투자한 시간은 하루 반나절 정도라 너무 짧게 본 탓도 있겠지요.



그런 제게 강렬한 인상을 준 스페인 광장. 어마어마한 규모에 섬세하게 건축되고 조각되고 그려진  광장은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이었습니다. 전날 큰 공연이 있었는지, 광장은 아침부터 온통 물건 치우는 소리와 장비들로 어지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장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짧은 세비야 일정을 마치고, 톨레도로 향하는 길에는 제가 그토록 고대하던 해바라기 밭을 볼 수 있었습니다. 중간중간 수확이 끝난 곳도 있어 잎만 있는 곳도 있었지만, 지평선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 밭은 무척 로맨틱했습니다.



숙소에 짐을 놓고 밖으로 나가보니 어디선가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들려왔습니다. 자연스럽게 음악을 따라가니 궁전 앞 야외 무대에서 연주회가 열리고 있더군요. 아이들과 함께 대성당 담벼락에 기대앉아 연주를 들었습니다. 사실 어린이 대상 연극이나 뮤지컬이 아니라면 아이들과 함께 공연 보러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찬 레스토랑도 그렇고요. 격식을 차려야 하는 곳에서는 늘 소란을 걱정해야 하고, 잔소리를 하는 저나 듣는 아이들도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야외 공연, 노천 식당이 많아 참 좋더군요.



톨레도는 스페인의 옛 수도로 '돈키호테'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합니다. 옛 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우리로 치면 '경주' 같은 곳이랄까요?



그래서 톨레도에서는 전통가옥을 개조해 만든 옛집에 한번 묵어봤습니다. 저의 첫 에어비앤비 경험이기도 했지요.



몇 백년은 족히 되어보이는 문을 열고 들어서면 네모난 마당이 있는 작은 연립주택이 하나 나오고, 계단을 따라 3층으로 올라가면 이렇게 옛 집을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한 저희 숙소. 집기나 시설은 모두 현대식이지만, 천정이나 벽 등 숨은 공간에서 옛 집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집주인도 정말 좋아서 그가 놓고 간 빵이며 우유로 아침을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보통 에어비앤비라면 남의 집에서 방 하나 정도를 얻어 묵는 것을 생각하는데요. 이렇게 집을 통째로 빌릴 수도 있습니다. 주방시설, 세탁시설 모두가 잘 갖춰져 있는 곳을 고르면 정말 내집처럼 편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여행에 강추!



그렇게 스페인 소도시 여행을 마치고 수도, 마드리드에 왔습니다. 마드리드를 나중에 들르니 좋은 점이 있더군요. 마요르 광장에 서니 론다 투우장 박물관에서 봤던 '마요르 광장에서의 투우' 그림이 떠올랐고,



프라도 미술관에서는 벨라스케스, 뒤러, 라파엘로, 고야 등의 그림을 보며 그들이 주제로 삼은 스페인 역사와 도시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프라도 미술관은 한 층 관람에 6시간을 (그것도 대충 봐서...) 할애할 만큼 대단했습니다. 다행히 둘째군이 관람 시간 중 3시간 정도를 푹 자주어 가족 모두가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우아하게 그림을 감상할 수 있었지요. ㅎ



산미구엘 시장은 기대에 못미쳤습니다. 시장이라기보다는 관광객 대상 푸드코트였습니다. 무척 비쌌고요. 아마 저희가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한 안달루시아 지방을 여행하고 와서 더 그렇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같은 타파 메뉴 가격이 두 배도 더 했으니까요.



오늘은 당일치기로 세고비아에 다녀왔습니다. 도시 전체가 온통 흙으로 구운 것 같이 붉은 마을인 세고비아는 하루 여행으로 아쉬울 만큼 멋스러운 곳이었습니다. 수도교와 디즈니 로고의 모델이 된 성으로 유명하지만, 실제로는 골목골목이 더 아름다웠던 곳이었습니다. 힘들여 수도교 윗부분까지 올라갔다 온 후 진아와 아이스박스에 담아 온 시원한 사과 하나씩을 나눠먹으며 또 하나의 즐거운 추억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내일은 게르니카가 걸린 소피아 미술관을 둘러보고 돈키호테의 동상이 있다는 스페인 광장에 가볼 예정입니다.

길게 썼지만... 결론은 저희, 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

남은 여행도 즐겁게 하고, 건강하게 돌아가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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