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쯤 발리] 2015년을 시작하며, 발리에서의 일상
- 센티멘탈 여행기/한 달쯤, 발리
- 2015. 1. 4. 01:22
발리 여행 15일차.
예상과 달리 조용히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보내고, 발리에서의 일상을 살며 가끔 여행을 떠나는 중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번 여행중 가장 아름다웠던 발리 남쪽 해변에서,
셀카봉을 십분 활용해 한국 가족들에게 보낼 '안녕한' 사진을 촬영했다.
따뜻한 곳에 있어서인지, 시끌벅적한 카운트 다운을 놓쳐서인지 아니면 덕담을 나눌 지인들이 주변에 없어서인지 영 새해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그래도 평소와 조금 다른 음식을 먹고, 호텔 직원과 연말 휴가를 떠나온 현지 여행객들과 함께 '슬라맛 타훈 바루~(Slamat Tahun Baru)'라는 인사를 나누며 훈훈하게 2015년을 맞았다.
사실, 지난 며칠간은 스티브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해변에서 강한 파도에 쓸려 허리가 꺾이고, 갈비뼈가 다치는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워 했기에 큰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뼈보다 근육 문제인 것 같다는 진단을 받았고, 어차피 뼈에 이상이 있어도 집에서 근신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치료방법이 없다고 하여 함께 시간을 보내며 회복에 힘쓰기로 했다. 연말연시이기도 해서, 잠시 장기여행자의 신분을 잊기로 했다. 즉, 조금 덜 아끼며 맛있는 음식도 먹고, 경치 좋은 곳으로 휴양 여행도 떠났더랬다.
2014년의 마지막 날을 기념하며, 숙소 근처 스시집에서.. 이 커다란 스시 보트가 250,000Rp다. 0 하나를 빼면 한화 가격.
한국 떠난지 보름 쯤 되니, 애나 어른이나 불판에 고기를 구워먹고 싶다며 아우성이다. 대안으로 찾은 스테이크집.
물론, 언제 어디서나 빈땅 한 두병은 기본.
배낭여행자들의 성지라 불리는 꾸따비치 뒷골목의 뽀삐스 거리
스티브에게는 근신기간이었지만, 함께 아이들을 볼 수 있으니 내게는 휴가 같았던 며칠이었다. 발리 여행을 계획할 때 가장 가보고 싶었던 추억의 장소, 뽀삐스 레인도 드디어 걸어봤다. 좁은 골목에 여행자를 위한 거의 모든 인프라가 있는 이곳은 마치 방콕의 카오산로드와 같이 세계 배낭여행자들이 모여 여행의 설렘을 만드는 곳이다. 인도네시아나 발리만의 분위기라기보다는 외국인들이 발리에 만들고픈 자유의 이미지가 있는 곳이랄까? 바이크에 서핑 보드를 싣고 달리는 근육남, 호기심 찬 눈으로 거리를 기웃거리는 여행객, 빈땅 한 병을 들고 해변으로 향하는 사람들, 그들을 호객하는 마사지사와 어설픈 거리의 마약상(?)들이 뒤엉켜 꾸따비치 뒷골목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 (그리고 난 이런 분위기가 가끔 미치도록 그립다.)
유명세만큼 분위기는 좋았지만, 인종차별이 느껴져 서운했던 포테이토 헤드
가장 아름다운 발리 바다를 볼 수 있었던 비치클럽 핀(Finn)
하루는 먼 남쪽바다, 웅아산으로 여행을 떠났었다. 지금 내가 묵고 있는 꾸따, 레기안, 스미냑 지역이 놀기 좋고, 일몰이 아름다운 한국의 서해 바다 비슷한 이미지라면, 이곳 웅아산 지역은 동해바다 같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해변을 자랑하는 곳이다. 위치는 울루와뚜 근처로 오토바이 30~40분 정도 거리. 지난 10년 간 몇 번의 발리 여행을 통해 꾸따, 스미냑, 누사두아 등 해변과 램봉안, 길리 뜨라왕안 같은 주변 섬을 여행했는데, 이곳 해변은 외딴 섬인 길리 뜨라왕안과 비슷할 정도로 정말 아름다웠다. 비록 입장료가 인당 250,000Rp나 되는, 인도네시아 물가로는 무척 비싼 비치클럽을 이용해야만 입장할 수 있는 프라이빗 비치였지만 아이와 함께 하기에는 썬베드와 음식이 있기에 무척 만족스러웠다.
그래도 일몰은 역시 꾸따비치.
발리 날씨는 요즘 계속 꾸물꾸물하다. 크리스마스 언저리에는 비가 와도 하루에 한 번 정도였는데, 요즘에는 종일 비가 오거나, 아니면 오전 내내 비가 오는 일이 흔하다. 우기이니 비가 오는 것은 당연하고, 비가 많이 와서 시원하기는 한데, 여행자 입장에서는 그닥 달갑지는 않은 일. 날씨가 계속 안좋아서인지 인도네시아의 수라바야에서 출발해 싱가폴로 향하던 에어아시아 비행기가 추락하는 사고도 일어났다. 우리가 머무는 레지던스에 마침 수라바야 출신 가족이 묵고 있었는데, 국가적 대참사에 몹시 슬퍼했더랬다.
2014년의 마지막날, 며칠 휴식하고 컨디션을 회복한 스티브는 다시 서핑스쿨에 나가기 시작했다. 이제 제법 파도를 몸에 익힌 스티브는 꾸따비치를 벗어나 좀더 크고 센 파도가 있는 먼 바다로 서핑트립을 나가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나는 숙소 근처의 즐길거리를 찾아 때로는 위험하게, 때로는 즐겁게 발리에서만 가능한 일상여행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열광했던 롤리팝스 플레이랜드
한국에서는 거의 가지 않던 키즈카페도 두 번이나 다녀왔다. 비가 많이 올 때는 바다가 뒤집혀 해변에 온갖 쓰레기가 밀려오기 때문. 가져간 놀잇감도, 홈스쿨링도, 숙소 수영장에서 노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지루해하는 아이들을 위한 대안이 필요했다. 두 곳 중 아이들이 더 좋아했던 이곳, 롤리팝스 플래이랜드(Lollipop's playland Bali)는 우리 기준에 무척 더럽고 허름했지만, 나름 호주 체인 놀이방으로 다양한 즐길거리가 있었다. 그중 대형 트램펄린과 플라이 하이, 락 클라이밍 등은 여느 놀이방에서는 볼 수 없는 시설이었기에 아이들이 열광했다.
New Years Eve에는 오랜만에 장을 봐 가족끼리 소박하게 한 해 마무리를 했다.
원래 계획은 핫한 클럽이 많은 숙소 근처 더블식스 비치의 해변 샌드백에 앉아 불꽃놀이를 보며 로맨틱하게 한 해를 마감할 예정이었으나 흥청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비만 쫄딱 맞고 들어왔다. 야밤에 사람 많은 곳으로 아이들과 함께 나가는 게 아니라는 진리. 그리고 우리도 이제 클럽에서 놀 나이가 아니라는 슬픈 사실도 거듭 확인했다.
하지만 아이들을 재우러 침실에 올라와 창밖을 보니, 불꽃놀이 명당이 따로 없었다.
3초 간격으로 여기저기서 불꽃이 터지는 소리를 들으며 빈땅을 홀짝이다가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새해 첫 날은 스티브를 서핑스쿨에 보내고, 한류 열풍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부쩍 많아진 인도네시아 현지인 가족과 함께 보냈다. 이분들께서 아이들을 무척 예뻐해 주신 덕에 나도 오랜만에 편히 수영을 즐길 수 있었다는. 진아는 인도네시아 사투리 중 '자바'지역 표현을 몇 개 알게 되었다.
여느 해와는 전혀 다르게 시작하고, 마무리했던 2014년 한 해였다. 거창했던 계획만큼 한 해를 잘 보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몇 번의 장기 여행을 통해 우리 가족은 서로에게 가장 좋은 여행파트너가 됐고, 좌충우돌하며 더욱 친해진 것만은 확실하다. 그래서인지 20여일 후면 곧, 1년 전의 바쁜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서운하고, 아쉽다. 그래도 이 모든 경험이 다가올 현실과 앞으로의 또 다른 삶을 지탱할 버팀목이 될 것이리라 믿는다. 더욱 단단해진 우리 가족의 2015년의 기대하며... 남은 여행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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