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발리 물가에 대하여...

외국인 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본토 사람들도 한번 쯤 가서 살아보고픈 '로망의 섬', 발리.

한국으로 치면 제주도쯤 되는 휴양지 발리에는 안타깝게도 이들 관광객을 노리는 바가지 요금이 있다.  
물정 모르는 외국인이라 호구대접 받는다고 괴로워할 필요 없다. 외국인과 자국민만의 차별은 아니니까.


더블식스 비치의 아름다운 일몰


여행중 만나 카톡 아이디를 교환한 한 자바인(인도네시아 자바섬 수라바야 지역 출신)은 이렇게 말했다.
"발리가 원래 그래. 여기는 웨스턴 가격, 관광 온 자국민, 현지인 가격이 달라. 그러니까 뭐든 무조건 네고 해야해."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난 웨스턴이 아니라 너네랑 같은 아시안인데."
"피부색 흰 아시안에게는 더 비싸게 받을 수도 있어."

우리가 한 달 머물고 있는 호텔의 택시 기사인 악바르(발리 출신)는 이렇게 말했다.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비싼 곳은 자카르타야, 다음이 아마 발리일걸? 족자카르타도 유명한 관광지지만 발리보다는 저렴해. 수라바야 같은 곳은 물가가 저렴해서 살기에 최고지. 하지만 그거 알아? 발리 물가가 비싸지만, 발리 사람들 수입은 얼마 안된다는 거. 내 월급은 13만 원이야."
"(귀를 의심하며) 30만 원?"
"아니, 13만 원."
"한 주에?"
"아니 한 달에. 30일, 한 달. 한 주에 6일 일하고, 하루 쉬어."
(참고로 나는 이 기사를 반나절 고용하는데 호텔에 4만 원을 냈다.)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는 발리 상인들의 공공연한 바가지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던 나는, 그만 입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13만원이라니. 동남아시아 중저가 호텔의 하루 숙박비, 한국 패밀리레스토랑에서 한 끼 거하게 먹으면 나오는 가격 아닌가.
과연 이 돈으로 한 달 생활이 가능하기는 한 건가 의문이 생겼다. 물론, 수당이나 팁 등 다른 루트의 수입이 있기는 하겠지만, 충격이었다.


생각해보니 아무리 바가지 요금이라고 해도,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 비하면 발리 물가는 여전히 저렴하다.
바가지를 써봤자 값비싼 물건이 아니라면 적게는 500원, 많아봤자 1,000원~2,000원 정도인 것 같다.
(물론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값비싼 레스토랑이나 부띠끄샵이 있긴 하지만...
)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는 진상부리지 말아야지, 속아줘야지 자연스럽게 결심하게 됐다.

그런데 그런 관광객의 마음을 아는지, 발리 사람들은 바가지 씌우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다.
너네는 많이 버니까, 많이 쓰는 건 당연하다는 심리랄까.

아이러니한건 이렇게 바가지 씌운 수입이 발리 사람들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건 아니라는 거다.

우리가 쓰는 돈 대부분은 발리 산업을 지배하는 외국인(특히 호주) 자본가에게로 흘러간다.
심지어 꾸따비치에서 썬베드를 빌려주거나 보드 강습을 해주는 비치 보이들에게도 호주인 보스가 있다.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필요할 뿐이라고 했던가?
3만 원짜리 스테이크를 1만 원에 먹기 위해서는 한 끼에 300원짜리 식사를 하는 다른 계급(!)의 사람들이 필요하다.
상상 못했던 발리의 뒷모습을 마주한 나는, 요즘 너무 혼란스럽다.
이게 자본주의라면, 너무 가혹하다.




계급은 외국인과 현지인에게서 뿐 아니라 피부색 흰 자국민과 아닌 자국민 사이에도 존재한다. 한눈에 보기에도 다른 사람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유니폼에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 처음에는 아픈 아기들이라 간호사가 따라 나왔는줄 알았다. 그래서 둘 다 마스크를 했겠거니 했다. 두 사람은 앉거나 서서 아이들을 돌보거나 부의 상징같은 외제 병이유식을 먹였다. 가만보니 간호사가 아니라 보모였다. 부산한 보모들과 달리, 멀찌감치 창가에 앉은 가족들은 가끔 그들에게 감시의 눈길을 보내며 평화롭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들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내가 지켜보지 않아 보모들도 밥을 함께 먹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후에 주변에서 들은 얘기로는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했다. 이후 키즈카페 등 다른 곳에서도 복장을 갖춘 보모들을 꽤 여럿 마주쳤고, 그들을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나, 눈빛을 볼 때마다 너무 불편하고 속이 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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