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땅은 이런 모습? 진짜 하와이를 만나다, '빅아일랜드 힐로'
- 센티멘탈 여행기/미서부 하와이 사이판 괌
- 2013. 11. 27. 10:24
하와이에서의 첫 아침이 밝았다.
일정 이틀째인 오늘부터는 하루에 하나씩, 하와이의 이웃 섬을 돌아보는 '하와이 이웃섬 투어'가 예정되어 있다.
Day 2. 하와이에서 가장 큰 섬이며 활화산이 있는 '빅아일랜드'(Big Island),
Day 3. 가장 오래된 섬으로 드라마틱한 자연경관을 볼 수 있는 '카우아이'(Kaua'i),
Day 4. 하와이의 옛 수도가 있던 곳으로 해변의 아름다움과 세계 최대의 휴화산의 장관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마우이'(Maui),
Day 5. 그리고 하와이의 인구 대부분이 살고 있으며 와이키키 비치가 있는 최고의 관광지, '오아후'(O'ahu)까지
숙소가 있는 오아후 섬을 제외하고는 앞으로 사흘간 매일 하와이 주내선을 타고 섬을 오갈 예정이다.
첫 여행지는 빅아일랜드, 그중에서도 우주적인 화산의 매력을 볼 수 있는 '힐로'로 출발~!
▲ 하와이언에어 하와이 주내선에서 제공되는 목적지 지도. 섬 여행을 시작할 때마다 받아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지도를 보다 보니 빅아일랜드가 섬의 정식 명칭이 아니라 하와이 섬의 애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와이 내에 하와이 섬이라니?!)
빅아일랜드는 '살아있는 화산, 아름다운 해안선, 역사적인 올드타운, 리조트와 골프, 트로피컬 어드벤쳐' 정도로 요약되는 듯.
"Aloha, e komo mai ... (안녕하세요. 환영합니다.)"
'알로하(Aloha, 안녕하세요.)'와 '마할로(Mahalo, 고맙습니다.)'외에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지만, 하와이어로 시작하는 기내방송을 귀 기울여 듣는다. 머리에 플루메리아 꽃을 단 승무원이 서빙하는 트로피칼 음료를 받아 드니 하와이임이 실감 난다. 여행의 시작에서부터 하와이를 느끼게 하는 서비스... 정말 느낌 있다.
▲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빅아일랜드 전경. 빅아일랜드는 크게 화산 국립공원이 있는 동쪽의 '힐로'와 커피로 유명한 서쪽의 '코나', 대규모 리조트 단지가 있는 코할라 코스트 지역으로 나뉜다. 섬이 워낙 커서 하루에 돌아보는 것은 어려우며, 관광객들은 보통 데이투어를 이용해 힐로와 코나를 하루씩 둘러보거나 볼거리 많은 힐로만 여행한다.
30분쯤 지났을까? 목적지가 가까워 올수록 용암이 흘러내려 굴곡진 거대한 산등성이와 듬성듬성 분화구들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 일정은 반얀 드라이브를 시작으로 화산 국립공원까지 빅아일랜드 힐로의 주요 명소를 모두 돌아보는 핵심 관광코스.
이동거리가 꽤 길고, 화산 국립공원만 보는 데도 몇 시간이 소요되므로 데이투어시에는 새벽에 출발해 9시간 정도 관광 후 저녁 8~9시 즈음 비행기로 도착하는 일정으로 진행된다.
이색 가로수길, 반얀드라이브
▲ 반얀 드라이브에 있는 거대하고 신비로운 반얀트리. 자세히 보면 줄기가 늘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줄기가 자라 땅에 닿으면 그대로 뿌리가 되어 번식하는 반얀트리는 특성상 이렇게 가끔 줄기를 자르며 관리를 해줘야 한다. 그대로 두면 도로를 점령하는 것은 시간문제.
'빅(Big)' 아일랜드라더니. 생각해보니 정말 투어의 출발점인 '반얀 드라이브(Banyan Drive)' 부터가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함이었다. 반얀 드라이브는 우리가 흔히 보리수나무라고 알고 있는 반얀 트리 가로숫길이다. 나무는 모두 미국 본토에서 방문한 정부 고관이나 명사들이 1930년대부터 기념 식수한 것으로 역대 대통령인 닉슨, 루즈벨트와 야구선수인 베이브 루스가 기증한 것도 있다. 길 좌우로 빼곡히 늘어서 있는 반얀트리 사이를 달리는 길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인 듯 환상적이다.
▲ 반얀 드라이브를 벗어나면 갑자기 탁 트인 바닷가가 나타나며 해안 드라이브 코스가 시작된다.
일본식 정원, 릴리우오 칼라니 가든
▲ 일본식 정원, 릴리우오 칼라니 가든
해안도로를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힐로 남동쪽에 있는 '릴리우오 칼라니 가든(Queen Liliuokalani Gardens)'에 닿을 수 있다. '릴리우오 칼라니'는 하와이 마지막 여왕의 이름으로 이곳은 현지인들에게 피크닉 장소 겸 낚시 포인트로 애용되는 곳이다.
이곳은 빅아일랜드에 거주하는 인구 중 80%나 되는 아시아인, 그중에서도 반수를 차지한다는 일본인의 힘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인근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던 일본계 이민자들이 만든 공원이라 정원의 석등과 정자 등에서 짙은 일본색을 느낄 수 있다. 우리에게는 왕년의 하이틴 스타인 '최수종, 하희라'의 결혼식 장소로도 알려졌다. 빅아일랜드에 며칠 머물 수 있다면 가까운 파머스 마켓에서 음식을 사와 도시락 피크닉을 하면 좋을 것 같다.
리얼 하와이언, 힐로 파머스 마켓
▲ 힐로 파머스 마켓
진짜 하와이언들은 어떻게 살까?
힐로 다운타운에 있는 '힐로 파머스 마켓(Hilo Farmers Market)'에서는 하와이산 채소와 과일, 집에서 만든 잼과 소스 등 하와이언의 삶을 만날 수 있다. 매일 만날 수 있는 상설 장이지만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큰 장이 서는, 우리네 오일장과 비슷한 재래시장이다.
재래시장인 만큼 신선한 제철 채소와 과일이 넘쳐난다. 우리에게 익숙한 토마토나 옥수수, 열대 과일인 코코넛과 용과, 파파야 등이 수북수북 쌓여있다. 여행자 신분이지만 장바구니 든 현지인들 틈에서 기웃거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숙소로 가져갈 수만 있다면 달고 맛있는 하와이산 파파야와 파인애플을 잔뜩 샀을 텐데, 다시 비행기를 타려면 절차가 번거로워지니 눈으로만 즐길 수 밖에 없었다.
▲ 왼쪽부터 스팸 무수비, 쿠로로와 포이, 홈메이드 핫소스, 열대과일 주스
하지만 실망하기엔 이르다. 힐로 파머스마켓에서는 바로 먹을 수 있는 홈메이드 푸드를 만날 수 있으니까. 이것이야말로 '리얼 하와이안'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진짜 하와이 음식들이 많다. 하와이를 대표하는 스팸 무수비(스팸 초밥), 전통음식인 포이(하와이산 토란, 1~2일 숙성시켜 신 맛이 나는 것을 최고로 친다.), 쿠로로(포이와 코코넛 밀크를 넣은 양갱), 향이 좋은 패션 프룻이나 달콤한 코코넛도 주스도 맛볼 수 있다.
숨 쉬는 지구를 느끼다, 아카카 폭포 주립공원
▲ 아카카 폭포 주립공원
이제부터는 빅아일랜드의 대자연을 탐험할 시간. 아카카 폭포 주립공원(Akaka Falls State Parks)으로 향한다. 그런데 파머스 마켓에 있을 때부터 내리던 비가 그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다행히 맞을만한 정도였고, 오랜만의 빗길 산책도 나름 운치있을 것 같아 대충 모자만 눌러쓰고 차에서 내렸다.
▲ 아카카 폭포
이슬비를 맞으며 숲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135m의 아카카 폭포가 눈앞에 나타났다.
빗속이었지만 이끼처럼 우거진 나무 사이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상쾌했다.
폭포도 멋지지만 사실 아카카 주립공원의 진면목은 폭포까지 이어지는 산책로다. 거대한 대나무숲 사이로 우거진 다양한 야생 난과 관엽식물, 열대식물 등을 구경하며 걷는 길은 마치 야생 식물원에 들어온 듯했다. 점점 비가 쏟아져 내려 사진은 많이 못 찍었지만, 빗속의 정글 산책이라 더욱 운치 있게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힐로 올드타운
축축한 모자와 겉옷을 대시보드 위에 널고, 다시 달리는 길. 시내를 지나는 길에는 차창 밖으로 힐로 올드타운을 구경할 수 있었다. 오래된 건물에는 저마다 설립 연도가 적혀있는데 빈티지한 멋이 흐르는 색감과 건물 형태가 멋스러웠다.
태고의 신비, 화산 국립공원
이제, 오늘의 마지막 코스이자 하일라이트인 '화산 국립공원(Hawaii Volcanoes National Park)'으로 향한다. 빅아일랜드, 특히 힐로를 찾는 여행자들은 모두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인 화산국립공원을 보기 위해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산국립공원은 '킬라우에아 산', 그리고 '마우나키아 산' 두 개의 활화산 위에 존재하는데, 우리가 가는 곳은 세계에서 활동이 가장 활발한 활화산인 '킬라우에아 산(Kīlauea, 해발 1,222m)'이다. 지난 200여 년간 꾸준히 활동해온 이 화산은 불과 30년 전인, 1983년에도 크게 폭발했고, 이후로도 용암이 흘러내리는 모습이 종종 관찰됐다. 최근에는 바로 지난 주인 11월 19일에 킬라우에아 칼데라에 있는 할레 마우마우(아래 사진) 분화구에서 용암이 흘렀다고 보고되었다. 현재는 가스만을 내뿜고 있지만 그 밑에서는 요즘도 용암의 수위가 오르내리며 언제 흘러 넘칠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상태라고 한다.
▶ 요즘 화산이 어떤 상태인지 알고 싶다면 화산 국립공원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자. http://www.nps.gov/havo/planyourvisit/lava2.htm
▲ 화산 국립공원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할레마우마우 분화구, 위 사진과 비교해 보자.
킬라우에아 산에는 여러개의 분화구가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산 정상에 있는 '할레마우마우 분화구(Halemaumau Crater)'와 '이키 분화구(Kilauea Iki Crater)'다. 그중 할레마우마우 분화구는 지름 1Km, 높이 85m나 되는 큰 분화구. 직접 보면 화산재로 뒤덮인 황량한 벌판 한가운데에 커다란 구덩이가 있고, 그 속에서는 누가 불을 피워 놓은 듯 쉴 새 없이 연기와 유황냄새가 피어오른다. 활화산이라고 해서 부글부글 끓는 용암을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내심 기대했지만, 볼 수 없었다. 분화구 속 붉은 용암호를 보려면 불빛 없는 밤에 가야 한다고.
하와이 원주민들은 이곳, 할레마우마우에 불의 여신 '펠레'가 살고 있다고 여긴다. 화산석을 가져가면 펠레를 화나게 할 수 있으며, 그녀의 검은 머리(용암을 상징)가 붉게 변하면 화산이 더 크게 폭발할 수 있다며 자연을 신성하게 여길 것을 요구한다. 어찌 보면 빅아일랜드 자체가 펠레에 의해 창조된 섬이 아니던가.
▲ 할레마우마우 분화구 전망대. 날이 흐릴 때는 가까이에서 분화구를 볼 수 없다. 유독가스가 많이 나오는 날은 입구가 폐쇄되기도 한다.
▲ (왼쪽) 굳은 용암 사이를 뚫어 길을 낸 도로, (오른쪽) 용암이 덮쳐 도로가 끊긴 흔적
빅아일랜드는 하와이의 섬 중 가장 큰 섬이지만, 가장 젊은 섬이기도 하다. 화산 폭발로 흘러내린 용암이 굳어 새로운 해안선이 생기고, 섬의 면적이 점점 더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도로였던 곳을 용암이 덮친 흔적이며, 흘러내린 용암 사이를 뚫어 다시 길을 낸 곳 등 그 흔적은 가는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렇게 끊어진 도로에 놀라고, 용암 사이를 지나 다다른 검은 황무지. 끓어 오르고 녹아 흐른 흔적만이 남은 검은 땅에 서니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빅아일랜드의 화산국립공원에 들어와 이제껏 화산 섬의 생성과정을 하나하나 목격해 왔지만, 그렇게 생성된 땅이 이렇게 우주적인 풍경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진정한 '태고의 신비'란 녹음이 우거진 숲이 아니라, 바로 이런 모습이라는 것도!
땅이 굳은 모양을 보면 용암이 어떻게 이곳을 흘러갔는지 알 수 있다. HR기거가 에일리언을 디자인하기 전, 혹시 용암지대를 다녀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괴한 형태도 볼 수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렇게 척박한 환경에서도 식물이 자라고 있다는 것. 화산석에는 미네랄이 풍부해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비옥한 토지가 된다. 용암지대를 다닐 때 풀 한포기 없는 검은 땅이면 최근 화산작용으로 생겨난 곳이고, 풀이 덮는 면적이 넓으면 넓을수록 생성된지 오래된 땅이라고 보면 된다.
굳은지 얼마 되지 않은 용암을 밟고 선다는 것 자체가 흥분되는 일이다. 하지만 용암지대를 다닐때는 주의해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
1. 온종일 태양볕에 그을린 용암 벌판은 뜨겁고 그늘이 없다. 모자와 선크림, 특히 선글라스는 필수!
2. 용암 두께가 생각만큼 두껍지 않을 수 있다. 드러난 얇은 용암 표면은 불안정하니 밟지 않는 것이 좋다.
3. 용암이 자갈처럼 부서진 곳도 밟으면 안 된다. 미끄러져 크게 다칠 수 있다. (실제 나도 무심코 발을 디뎠다가 수차례 미끄러졌다.)
4. 사방이 화산석이라고 '기념으로 하나쯤?' 생각도 하지 말자. 불의 여신 펠레가 지켜보고 있다.
인솔자가 지시하는 대로만 행동하면 가장 신비로운 곳을 가장 안전하게 돌아보며 용암 하이킹 체험을 할 수 있다.
화산 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멋진 해식 절벽(volcanic sea cliff)에서 이렇게 점프 샷도 찍으면서 말이다. ^^
무지개의 섬, 빅아일랜드 힐로
▲ 오늘 데이투어는 빅아일랜드 거주 3년차 주민인 '데니얼'님이 맡아주셨다. 나는 솔로 여행객인 특권으로 운전석 옆자리에 앉을 수 있었는데, 덕분에 넓은 차창으로 손에 잡힐 듯 다가오는 다양한 빅아일랜드를 경험할 수 있었다. 옆자리에서 계속 사진을 찍으며 질문을 던지는 내게 '이런 손님, 정말 싫다' 타박하면서도 세심하게 주요 포인트를 일러주고 사진과 글로 담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데니얼님께 감사드린다.
오늘 본 빅아일랜드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무지개 같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초록의 원시림과 검은 용암지대, 살아있는 폭포와 화산, 바다 등 다양한 모습이 공존하며 실제로도 연 강수량이 높아 비가 많이 내려 수시로 무지개를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루 만에 돌아본 빅아일랜드가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몇 년 후의 빅 아일랜드는 앞으로 일어날 화산작용으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볼 수록 더욱 궁금해지는 곳이고 다시 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하와이 속의 진정한 하와이를 경험하며 화산의 매력에 흠뻑 빠졌던 하루.
돌아오는 길에는 내 생에 가장 크고 선명한 무지개를 볼 수 있었다.
* 취재지원: Get About 트래블웹진
[깨알 여행Tip]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쇼핑!
패키지 투어, 쇼핑은 싫다고? 빅아일랜드에서는 의심하지 말자.
내가 먹어본 하와이 최고의 쿠키는 '빅아일랜드 캔디(Big Island Candies)', 시식으로 잠깐 맛봤지만 이보다 더 맛날 수 없었다.
하와이에서가면 꼭 사와야 한다는 마카다미아 넛 '마우나 로아(Mauna Loa)' 농장도 이곳, 빅아일랜드에 있다.
좀 더 저렴하게, 다양한 제품을 구입할 수 있으니 빅아일랜드를 여행한다면 꼭 구입하시길~
두 곳 모두 자유여행객들도 들르는 빅아일랜드의 필수 쇼핑코스다.
(의심많은 나는 호놀룰루에서 더 싸게 살 수 있을거란 생각에 그냥 돌아왔는데, 그렇지 않더란... ㅠㅠ)
▲ (왼쪽) 빅아일랜드 캔디의 시식용 과자, 개인적으로는 쇼트브레드가 가장 맛있었다. (오른쪽) 마카다미아 넛 농장인 마우나 로아
그린데이 온더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