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녠콰이러~! 대만의 중심에서 2014년을 맞이하다.

12월 31일 vs 1월 1일


물리적으로는 똑같은 24시간, 똑같은 하루.
그러나 실제로는 달력이 통째로 바뀌고, 나이 한살을 더 먹고,
어쩌면 다른 학급, 다른 부서에서 전혀 다른 사람들과의 한 해를 시작하게 되는 대단한 시작점이다.


아무리 일상이 바쁘고 힘들어도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저마다 한 해를 잘 시작하기 위한 나름의 의식을 치른다.

뜻깊은 한 해를 계획하며 해맞이 여행을 떠나는 이도 있고, 꾸벅꾸벅 조는 아이들을 억지로 깨워가며 새해의 시작을 함께하기도 한다.
차가 끊길 걸 알면서도 굳이 보신각 타종을 보러 나서는 사심 가득한 연인도 있다.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새해는 언제던가? 

온갖 추측이 난무하던 1999년의 마지막 날, 그때 나는 토론토에 있었다. 

우스꽝스런 밀레니엄 안경을 쓴 사람들 사이에서 종이 봉투로 감싼 와인을 홀짝이며 

온타리오 레이크로 쏘아대는 불꽃을 바라보며 새해를 맞았다. 


아직 세상이 끝나지 않았음에 감사했지만, 뭔가 대단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음에 허탈하기도 했던 그날. 



▲ Y2K가 온다며 법석을 떨던 토론토 신문. 이날 난 왜 신문을 샀을까? 



그리고 내 '특별한 새해'에는 올해의 시작도 빼놓을 수 없다.

5년만에 남편과 단둘이 떠난 대만 여행에서 한국의 보신각 타종 행사에 버금가는(?) '타이중 불꽃놀이'를 보고 왔으니 말이다.  

보신각 타종만큼 경건하지도, 온타리오 레이크에서의 밀레니엄  불꽃놀이처럼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전혀 낯선 곳,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뜨끈한 공차를 마시며 맞이하는 따뜻한 새해는 나름 특별했다.     



2013년 12월 31일 : 19시 30분, 일중가



2013년 12월 31일 19시 30분, 타이중의 '홍대 앞'이라고 불리는 일중가(一中街) 풍경. 

오늘 새해 카운트 다운과 불꽃놀이 행사는 이곳에서 가까운 타이중 야구장에서 열린다. 내가 묵는 호텔에서는 차로 20분, 걸어서는 1시간 거리. 

굳이 걷는 시간을 밝히는 이유는 버스가 밤 10시면 끊기기 때문이다. 행사가 끝나고 인파가 쏟아지면 택시잡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오토바이를 하루 빌릴까 고민하다가 도로가 통제될 것을 예상해 그만두기로 했다. 

한 시간쯤이야. 걸을 수 있지.




▲ 요즘 대만의 여성복 트렌드는 페플럼



 걷다가 눈에 띈 호비. 이거 아이챌린지 구독해야만 주는 거 아니었어? (엄마들만 아는 이야기)



▲ 축제의 밤, 야광봉과 불꽃놀이는 필수



▲ 주점 보기가 힘든 건전한 대만 타이중이지만, 이날은 거리에서도 만날 수 있었던 맥주



▲ 흥겨운 거리공연이 있어 더욱 즐거웠던 그날 밤



2013년 12월 31일 : 20시, 일중가 야시장


젊은 층을 겨냥한 트렌디한 상점과 팬시한 음식점, 그리고 야시장이 촘촘하게 늘어선 중가,

야시장이 시작되는 골목으로 들어서니 새해를 맞이하려는 사람들로 바다를 이루었다. 



▲ 사람들이 지나는 길에 커다란 중국식 웍을 걸고 밥과 면을 볶아대던 식당.
    불맛을 내기 위해 이따금씩 큰 불을 피워 올리는데, 그 모습에 혹해 사람들이 계속 안으로 들어선다. 
 
    차우판 무게가 상당해 보이던데, 볶음밥 하나를 만들기 위해 적어도 10번은 들었다 놨다 하는 듯.  


가방을 앞으로 옮겨 쥐고, 카메라를 목에 걸고, 스티브의 손을 꼭 잡은 채 사람의 파도에 휩쓸리다가 문득 허기가 느껴져 

피신하듯 들어선 곳이 바로 이 식당. 커다란 중국식 웍에 연신 불맛을 내며 밥과 면을 볶아대는 모습에 혹했다. 



▲ 소고기 볶음밥, 뉴러우 챠오판

중국어 메뉴판은 잘 모르겠고, 우리 뒤로는 주문이 계속 밀리고 해서 대충 시킨 것이 소고기 볶음 밥. 

한 해의 마무리치고는 좀 소박했지만, 그럭저럭 먹을만 했다.



2013년 12월 31일 : 21시


▲ 일중가 최고 인기의 지파이 맛집(인것 같다. 여기에만 사람들이 긴 줄을 서있었으니)


다시 사람 많은 야시장에 들어선 우리는 방금 밥을 먹었음에도 간식거리를 찾아 나섰다. 야구장에서 자정 넘어까지 버티려면 간식이 필요하다며. 

대만의 길거리 음식으로 유명하다는 지파이(치킨가스?)와 맥주 몇 캔으로 나름의 치맥을 즐기고자 했다. 

그런데 주문하고 사는 데 걸리는 시간이 20분. 

번호표를 받고 부를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중국어를 몰라 좀 애를 먹었다. 

눈치 9단, 어디선가 튀어나온 스티브의 출장 생존 중국어로 다행히 위기 모면. ^^v 





▲ 통제된 도로 풍경, 
야구장에 가까이 갈 수록 분위기는 고조되고...



2013년 12월 31일 : 22시 30분, 타이중 야구장


이미 야구장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어서 그런지, 행사장 진입은 비교적 쉬웠다. 그러나 자리잡기가 쉽지 않았다. 

공연이 펼쳐지는 무대 앞 스탠딩석에서 뜻모를 중국어 노래와 춤을 잠시 감상하다가 스티브가 매의 눈으로 찾아낸 중앙 좌석으로 얼른 올라섰다. 


자리를 잡고는 지파이를 한 입. 하지만 맥주는 시도하지 못했다.
화장실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이런 장소에서의 음주가 생활화 된 우리와는 달리, 공차를 마시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그들사이에서
차마 맥주를 꺼내들 수 없었다.


대만보다 한 시간 빠른 한국에서는 벌써 한 시간 전부터 실시간으로 축하인사를 해온다.
온라인이라는 같은 공간, 하지만 서로 다른 곳, 다른 시간대의 사람들이 새해를 맞는 풍경이 재밌다.



2014년 1월 1일 : 00시 00분, 신녠콰이러~!



새해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리는 시끌시끌한 사회자의 멘트가 끝나고, 이내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5, 4, 3, 2, 1, 

新年快樂~! (신녠콰이러~!)






"이렇게 가까이에서 불꽃을 본 적이 있던가?"


새해 인사 대신 우리가 나눈 첫 이야기 주제는 어처구니 없겠도 바로 저 불꽃.

굉음과 함께 폭발하는 폭죽을 보며 기대했던 것 보다는 좀 얼떨떨하게 맞이한 새해였다. 

조금 더 로맨틱 했어도 좋으련만... ㅎ 



한국보다 조금 느리게 맞이한 2014년, 새해 첫날, 그리고 새로운 시작.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계획은 없지만 우리는 조금 더 행복하기 위해 누군가의 무엇이 아닌 누군가가 되어보기로 했다. 
여느 해와는 다른 2014년, 큰 결심인 만큼 걱정도 많지만 지금은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이니 일단 저지르는 걸로.

돌아오는 길에는 손을 맞잡고 느릿느릿 걸어보았다. 
어차피 예상했던 것 처럼 차도 끊겼고, 택시도 잡기 어려우니.
올 한해, 계속 이렇게 손잡고 걸어보자며. 

### 



['타이중 여행' 관련 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