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추억을 찾아, 4박 5일 밴쿠버 혼자 여행 스케치
- 센티멘탈 여행기/세 번째 캐나다
- 2015. 9. 2. 07:30
치열했던 여름이 시들해지는 이맘때 즈음이면 막연히 혼자 여행을 꿈꾼다.
내가 모르는 나를 만나고, 새로운 풍경과 인연을 만나고, 또 다른 가능성을 만나는 여행.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도 좋지만 엄마도 가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니까.
내게 맞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으며 그 속에서 당분간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내 혼자 여행의 시작은 풋풋했던 20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토론토에서 시간을 보낸 후, 한국으로 귀국하는 중에 경유지로 들른 밴쿠버에 잠시 혼자 머물렀던 것이 처음이었다.
혼자 떠나고 싶었다기 보다 혼자일 수 밖에 없었던 그 때. 기대보다 걱정이 훨씬 컸지만 생각보다 외롭지 않았다.
세상에 온전히 혼자일 수 없다는 이치를 깨달았달까?
사스카추완 주의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 이번에도 그때처럼 잠시 밴쿠버에 들렀다.
그리고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그렇게 나는 15년 전의 나를 다시 만났다.
Day 1 혼자여도 괜찮아. 밴쿠버로
+ 일정: 데이비 스트릿 - 하이 밴쿠버 호스텔 다운타운 - 그랑빌 아일랜드
▲ 사스카추완의 주도 리자이나에서 BC주의 밴쿠버로 향하는 항공권.
"Eat More~!"
익살스러운, 그러나 애정어린, 사스카추완스러운 조디의 인사를 뒤로 하고 리자이나 공항으로 향했다.
8시 55분 비행기. 이번 캐나다 여행의 비행 스케줄은 정말이지 완벽했다. 2시간 남짓 떨어진 밴쿠버로~
▲ 밴쿠버 스카이트레인(Sky Train)을 타고 공항에서 도심으로 향하는 길
새로운 여행의 시작을 오전에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특히 이번 여행처럼, 무계획으로 떠났을 때는 더욱 그렇다. 숙소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가야하는지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공항에 내려서는 무척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대책없는 여행자를 살린 것은 '구글맵'~! 솔직히 가이드북 한 권 없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다 스마트폰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배터리가 남아있는 한, 구글맵은 늘 곁에서 친절하게 길을 일러주며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 데이비 스트릿(Davie St.)에서 내 인생 최고의 쌀국수를 먹었다.
▲ 15년만에 다시 묵은 하이 밴쿠버 다운타운 호스텔. 이번에는 226호 4번 침대가 내 자리였다.
쌀국수 한 그릇을 먹고 다시 숙소에 들어가 짐을 푸는데... 그런데 이게 웬일~! 어디선가 스멀스멀 김치냄새가 나는 것 아닌가? 방에 김치가 있을리는 없고... 아뿔싸! 5일 전 비행기에서 받아둔 꼬마김치를 캐리어에 넣어두고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동안은 직접 끼니를 해결할 일이 없었기에 김치의 존재 자체를 잊고 있었는데, 숙성이 될 데로 된 김치는 빵빵하게 부풀어 결국 호스텔에서 터져버렸다. ㅠㅠ 오마이갓! 얼마나 아찔했던지...; 다행히 김치를 지퍼백에 한번 더 넣어 두었고, 낮이라 방에 아무도 없어서 샤샤샥 김치를 주방에 버리고 사태를 마무리 했다.
▲ 15년 전의 추억을 되새기며, 그랑빌 아일랜드 퍼블릭 마켓 뒤 벤치에서.
방 창문을 활짝 열고 나와 그랑빌 아일랜드로 향했다. 낭만적인 그랑빌 아일랜드~ 다른 것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이곳 만큼은 15년 전의 기억이 생생했다. 맥주? 커피? 고민하다가 푸드코트에서 수프 한 그릇을 사와 벤치에 앉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연주를 들으며 수프에 묻어놓은 따끈한 빵을 한 입 베어무니 더 부러울 것이 없었다.
Day 2 잊을 수 없는 맛, 밴쿠버 푸디투어
+ 일정: 밴쿠버 푸디투어 - 랍슨 스트릿, 그랑빌 스트릿 - 캐나다 플레이스 - 개스타운
▲ 열정적인 가이드의 신 나는 소개와 함께, 밴쿠버 푸드트럭과 음식을 즐겼다.
둘째 날엔 내가 밴쿠버 여행 일정중 유일하게 계획했던 '밴쿠버 푸디 투어'를 다녀왔다. 밴쿠버 푸디 투어는 맛집 투어, 그랑빌 아일랜드 투어, 푸드 트럭 투어 총 세 가지로 나뉘는데, 평소 길거리 음식에 관심이 많은 나는 푸드 트럭 투어를 예약했다. 짧은 시간에 여러 음식을 맛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밴쿠버 시내를 걸으며 역사와 다운타운 곳곳을 소개해 줘서 완전 만족했던 투어였다.
▲ 옛 건물과 사인을 그대로 보존해 빈티지한 멋이 있는 그랑빌 스트릿
밴쿠버 다운타운 중심인 랍슨 스트릿을 위주로 다녀서 나같은 낯선 여행자에게는 방향 잡기에 도움이 되는 투어이기도 했다. 일기예보에 살짝 비가 온다고 해서 무척 걱정했는데, 다행히 오락가락하며 약간 흩뿌릴 뿐, 큰 비는 오지 않았다.
▲ 해안 절경을 볼 수 있는 캐나다 플레이스, 날이 흐려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름 운치 있었다.
푸디투어를 마친 후에는 목적한 곳 없이 종이 지도 한 장을 들고, 오래 전 내가 그랬듯 이 거리 저 거리를 걸어봤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날씨에 거리에서는 반팔셔츠에서 패딩점퍼까지 다양한 차림을 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 개스타운, 15분마다 한번씩 연주되는 음악을 들으러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 바에서 맥주 한 잔을 한 후 바라본 개스타운의 밤풍경
Day 3 노 핸드~! 캐필라노 서스펜션 브릿지
+ 일정: 웨스트앤드 파머스 마켓 - 캐필라노 서스펜션 브릿지 - 예일타운
▲ 비오는 날 호스텔에서의 아침. 휘슬러에 가고 싶었으나 시기가 성수기인 만큼 갑자기 교통편을 예약하기 어려웠다.
밴쿠버의 일기예보는 꽤 정확한 편이다. (참고: http://www.theweathernetwork.com/weather/canada/british-columbia/vancouver)
매 20분 마다 현재 날씨가 업데이트 되고, 시간별, 날짜별로 최대 1달까지 날씨를 조회할 수 있어 여행 계획을 세우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이 날은 여름날씨 답지 않게 종일 서늘하고 비가 내릴 예정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숙소 게시판에서 발견한 '휘슬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제발 예보가 맞지 않기를 바라며 온/오프라인으로 모은 정보를 총 동원해 다양한 곳에서 진행하는 휘슬러 투어, 그레이 하운드 등 왕복 교통편을 알아봤다. 그러나 지금이 성수기임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당장 내일, 또는 모레 출발하는 모든 교통편이 이미 마감 되었다.
▲ 휘슬러를 포기하고 숙소를 나서는 길에 만난 웨스트앤드 파머스 마켓. 유기농 채소가 주를 이뤘다.
결국 나는 휘슬러를 포기하고, 대신 동생이 추천해준 캐필라노 서스펜션 브릿지에 다녀오기로 했다. 그런데, 여행은 뜻대로 되지 않아야 더 즐거운 법?! 무거운 걸음을 옮기다 보니 숙소 바로 근처에서 파머스 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열흘 여행 중에 네 번째 만난 파머스 마켓. 아무래도 이번 여행의 주제는 '올 어바웃 푸드'로 정해진 것 같다.
▲ 캐필라노 서스펜션 브릿지. '노 핸드 노 핸드'를 외치며 뒤따르던 아저씨 덕에 무척 짜릿한 경험이 되었다.
밴쿠버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캐필라노 서스펜션 브릿지는 무려 136m 높이의 아찔한 흔들다리다. 다리로 유명해지긴 했지만, 사실 이곳은 다리 건너에 있는 거대한 우림이 진짜다. 밴쿠버 도심과는 다른, 자연의 모습을 느낄 수 있고,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 곳곳에 볼 거리도 많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건너다니는 트리탑 어드밴처, 절벽을 따라 걷는 네이쳐스 엣지 보드워크 등도 꼭 경험해봐야 하는 액티비티~! 뒤따라오며 'No Hand, No Hand, No Cheating~!'을 외치는 아저씨 때문에 흔들다리 위에서 아찔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곳.
▲ 저녁에는 스테포스에서 맛난 저녁을 먹고 예일타운의 야경을 보며 맥주 한 잔을 기울였다.
저녁에는 블로그로 인연이 된 스트레인저님과 급만남을~ ^^ 밴쿠버에 살고 있는 그녀는 몇 년 전, 한국에서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동갑내기, 심지어 생일도 비슷한 우리는 가끔 카톡 메시지를 주고 받는 사이. 최근에는 연락이 뜸했는데, 블로그를 통해 내가 밴쿠버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스트레인저님께서 먼저 연락을 주셨다. 마침 캐필라노 브릿지 이후의 계획이 없었던 나는 감사히 저녁 제안을 받았고, 덕분에 혼자는 가볼 생각도 하지 못했던 맛집에서 근사한 저녁을 얻어 먹었다. 뿐만 아니라 가이드를 받으며 밴쿠버를 둘러보는 호사를 누렸다. 예일타운에서 맥주 한잔을 기울이며 우리는 얘기했다. 인연이란~!
Day 4 트립어드바이저 추천 1순위, 스탠리 공원
+ 일정: 스탠리 공원 - 밴쿠버 공공 도서관 - 그랑빌 아일랜드 - 선셋비치, 잉글리시 비치
▲ 스탠리파크, Seawall
오늘은 어디를 가볼까? 여행전, 밴쿠버 볼거리를 찾으며 트립어드바이저를 기웃거렸던 기억이 났다. 다시 찾아보니 볼거리 1위에 'Seawall in Vancouver', 2위에 스탠리 파크, (3위는 푸드투어)가 나란히 있었다. Seawall은 뭐지? 15년 전에는 없었던 지형이 새로 생긴건가? 알고보니 Seawall은 해안을 따라 스탠리파크의 외곽을 도는 트레일이었다. 트레일 옆에 거대한 절벽에 있어 Seawall이라는 이름이 붙은듯 했다.
▲ Seawall in Vancouver, 밴쿠버에 촛대바위가?
자전거를 빌려 스탠리 파크로 들어왔더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따라 Seawall로 이동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처음에는 구글맵을 확인했는데, 그럴 필요도 없이, 보이는 광경만으로도 바로 이 곳이 트립어드바이저 추천 1위에 빛나는 Seawall임을 알 수 있었다. 맞은 편에는 그라우스 마운틴(Grouse Mt.)이 보이고, 저 해변에는 어디서 왔는지 바다사자도 한 마리 앉아 있었다.
▲ 로마의 콜로세움을 닮은 밴쿠버 공공도서관. 유리로 덮인 천정은 실내에서 보는 것이 훨씬 다름답다.
3시간 남짓 자전거를 탄 후, 다시 20여분을 걸어 밴쿠버 공공도서관으로 향했다. 어디선가 이 곳의 실내 사진을 본 후, 꼭 한번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일은 출국을 해야해서 여유가 없을 것 같아 최선을 다해 걸었다. 버스를 탈 수도 있었지만, 구글맵을 보니 기다리는 시간보다 걷는 시간이 빨랐다. 결국 나는 급한 성질 때문에, 밴쿠버에서 버스는 한 번도 타보지 못했다.
▲ 대기표를 받고 한참을 기다려야만 주문할 수 있는 소시지 맛집. Oyama Sausage @Grandvill Island
그리고는 다시 그랑빌 아일랜드로 향했다. 살라미를 사기 위해. 하루 세 자릿수의 대기표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이 밴쿠버 최고의 소시지 맛집을 도저히 그냥 두고 갈 수 없어 살라미와 초리조 조금씩을 포장했다. (오늘 일정은 누구에게도 추천할 수 없는 밴쿠버 다운타운 남북을 오가는 이상한 동선이다...; ^^;)
▲ 아름다운 밴쿠버의 선셋 @ 선셋비치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선셋을 보기 위해 선셋비치에서 잉글리시 비치까지 또 걸었다. 가는 길에 만난 노을 속의 연인이 정말이지 너무나 아름다워 뒤에서 셔터를 한참 눌렀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한국 유학생들이더란. ^^; 갑자기 한국에 두고 온 딸내미가 생각나는 건... 이제 15년 전의 내가 아니라서 그런 걸까? ㅎ
Day 5 아름다운 밴쿠버에 안녕을 고하다
+ 일정: 선셋비치 - 숙소 근처 산책 - 서울로
▲ 숙소에서 5분 거리, 매일 만났던 선셋비치에 안녕을~!
어제의 뜨거웠던 선셋비치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트랙을 따라 조깅하는 사람들을 비집고 혼자 해변으로 내려가 조용히 작별인사를 했다.
▲ 캐나다도 미니언즈의 인기가 뜨겁다.
매일 찾았던 해변, 매일 걸었던 거리, 매일 드나들던 카페를 마지막으로 들렀다.
드럭스토어에서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사는 것으로, 15년 만에 다시 만난 밴쿠버와의 이별의식을 마쳤다.
▲ 밴쿠버 공항에서, 곧 인천으로 떠날 비행기를 바라보며
여행지에 대한 최고의 찬사는 아마 '살아보고 싶다'는 것이 아닐까? 아름다운 해변과 산을 접한 도시, 밴쿠버. 도시이지만 여유가 느껴지는 곳. 백인과 유색인, 영어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 뚱뚱한 사람과 마른 사람, 일반인과 이반인, 노인에서 아이까지 모두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여행과 실제 삶은 많이 다르겠지만, 이런 곳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며칠이었다.
15년 만의 밴쿠버 여행, 다음은 또 언제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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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Tip]
* 밴쿠버 푸디투어: $49+Tax+Tip / foodietours.ca/tour/worlds-best-food-truck-tour
* 캐필라노 서스펜션 브릿지: 입장료 $37.95, 캐나다 플레이스 앞에서 매 20~30분마다 셔틀버스 운행/ www.capbridg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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