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듯 다른 재미찾기, 9박 10일 말레이시아 가족여행 스케치
- 센티멘탈 여행기/말레이시아 섬
- 2016. 2. 1. 11:14
사실 말레이시아는 휴가지로 고려해보지 않았던 곳이다.
주변에 다녀온 사람이 많지 않아 정보가 별로 없기도 했고, 비행 거리가 6시간 이상 걸려 가까운 거리도 아니었다.
떠오르는 것이라곤 페트로나스 트윈타워나 쇼핑, 골프, 세계적인 팜유 산지라는 것 정도?
비슷한 거리라면 물가가 저렴하고 즐길 거리가 많은 태국이나 인도네시아가 있는데 '왜 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쿠알라룸푸르,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그런데 내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시아 최대 저가항공사인 에어아시아의 거점이다.
에어아시아의 거의 모든 비행기는 쿠알라룸푸르를 경유하기에, 운항 편수가 많아 저렴한 항공권을 구할 기회가 많다.
이 기회는 여행 최고 성수기라 불리는 연말연시에도 해당한다.
여행자가 많으니 여행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다.
직접 여행해 보니 쿠알라룸푸르는 교통과 숙박, 먹거리, 쇼핑 등 모든 것이 관광객을 위해 디자인된 도시가 아닐까 의심할 만큼 편리했다. 작은 섬인 랑카위에는 택시 외에 대중교통이 없었지만, 렌터카로 다니기에 괜찮았다. 해변이 아니면 숙소비도 합리적이었고, 저렴한 물가와 더 저렴한 맥주값, 무엇보다 때가 덜 묻은 자연은 다음을 기약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크리스마스에 떠나 2016년 새해를 맞은 후 돌아온 9박 10일간의 말레이시아 여행,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떠나 더 즐거웠고, 더 기억에 남는 지난 여행을 스케치해본다.
Day 1. 크리스마스에 떠나다
▲ 크리스마스 아침, 인천공항 풍경
산타 할아버지와 그의 일행들이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하는 걸까?
공항은 아침부터 북새통을 이뤘다.
그도 그럴 것이 12월 25일(금)부터 1월 3일(일)까지, 우리의 여행 기간은 연말 최대의 황금 휴가 기간이었다.
많은 회사가 크리스마스에 맞춰 종무식을 했고, 나흘만 개인 휴가를 쓰면 여름 휴가 못지않은 10일 간의 긴 휴식을 즐길 수 있어 많은 사람이 해외로 향했다.
인천공항에서 쿠알라룸푸르를 거쳐 랑카위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항공권을 경유 편으로 끊지 않아 (최저가 항공권을 찾다 보니...) 쿠알라룸푸르에서 입출국 심사를 다시 받아야 해서이기도 했지만,
날이 날이라 어디든 사람이 많았고 쿠알라룸푸르 공항은 실내에서 버기카를 타야 할 정도로 넓었다.
Day 2. 랑카위에서의 첫 하루
▲ 호텔 발코니에서 바라본 랑카위의 해 뜨는 아침
긴 하루를 보내고 랑카위에서 맞은 첫 아침.
고작 1시간 시차인데, 호텔 발코니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일출을 만날 줄이야...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먹는 음식이나, 쓰는 말이나 인도네시아를 무척 닮았다.
한 달간 남짓 발리에 머문 경험이 있어서인지 익숙해 편했지만, 낯선 여행지의 새로움을 기대했던 나는 조큼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호텔 식당에 내려가 보니 색색의 고운 히잡을 둘러쓴 어머님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묵었던 곳은 랑카위 시내에 있는 한 이슬람 호텔이었는데, 방마다 메카의 방향이 표시되어 있고, 여자만을 위한 수영장이 따로 존재하는 등 무척 이색적인 곳이었다. 이후 나는 말레이시아 여행의 매력을 곳곳에 녹아든 '이슬람 문화'에서 찾을 수 있었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다가 모처럼 물 만난 가족들.
여독도 풀 겸 첫날은 수영장에서 원 없이 물놀이를 했다.
▲ 해 질 무렵 열리는 야시장
저녁에는 먹거리도 살 겸, 잘란 잘란 야시장 탐방을.
사테와 밥도 사고, 망고주스도 사고, 비누방울놀이도 하나씩 사서 목에 걸고~ ^^
Day 3. 아이들에겐 천국, 오리엔탈 빌리지
▲ 바닥 분수 전세 냈던 오리엔탈 빌리지
"렌트도 했으니 어디든 한번 가 볼까?"
랑카위에서는 그저 쉬자며, 아무 계획 없이 떠나왔다.
두 가족이 함께 여행하며 이렇게 무계획이어도 괜찮나 싶을 정도.
그래도 여기는 한 번쯤 가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곳이 전망대가 있는 '오리엔탈 빌리지'와 유네스코 지질공원으로 선정된 '맹그로브 숲'이었다. 마침 이 두 곳이 트립어드바이저 랭킹 1, 2위가 아닌가~!
▲ 용감한 오누이?!
맹그로브 숲은 투어로만 볼 수 있다기에 먼저 오리엔탈 빌리지로 차를 몰았다. 그러나 랑카위의 관광객들은 다들 여기에 모였는지 매표소 앞에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결국 아빠들은 표를 구하기 위해 줄 끝에 섰고, 아이들은 시간을 때우는 동안 매표소 앞 바닥분수에서 옷을 흠뻑 적시며 놀았다. 여벌 옷을 가져오지 않아 난감한 엄마들은 아이들 갈아입힐 옷을 본다는 핑계로 쇼핑에 나섰다.
▲ 색 모래를 채워 넣으며 그림을 그리는 신기한 모래공예
연못을 가로지르는 어린이용 집라인, 우주선을 닮은 범퍼카, 물고기 먹이 주기 체험, 신기한 모래공예까지 오리엔탈빌리지는 아이들에게 최고의 놀이공원이었다. 한 벌에 이천 원쯤 하는 랑카위 티셔츠와 해변 느낌 물씬 나는 원피스는 더 큰사이즈가 없어 아쉬운 멋진 기념품이었다.
▲ 해변의 점심 @SABY'S 푸드트럭
막내들 낮잠시간에 맞춰 들어와야 했기에 케이블카는 타지 못했지만, 오리엔탈 빌리지 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게다가 돌아오는 길에 들른 해변의 푸드트럭은 정말이지 완벽했다.
아이들은 한적한 해변에서 신나게 뛰놀고 (또 옷을 적시고...;), 어른들은 오랜만에 향 좋은 커피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날 맛본 닭가슴살과 망고, 페스토 소스를 곁들인 '트로피컬'이라는 이름의 샌드위치는 다시 생각해도 침이 고이는 최고의 맛이었단.
▲ 아... 얼마 만에 타는 스피드 보트인가! 잠시나마 뱃머리에 앉아 흩어지는 바람을 느꼈다.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 지질공원인 맹그로브 숲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 탄중루 비치로 향했다. 끝없이 이어진 맹그로브 숲으로 유명한 '킬림 생태공원(Kilim Geoforest Park)'은 흔히 '맹그로브 투어'라 부르는 여행상품으로 다녀올 수 있다. 전날 잠시 들러 봐둔 여행사에서 다행히 바로 출발하는 프라이빗 투어를 예약할 수 있었다.
▲ 맹그로브 투어 시 볼 수 있는 박쥐 동굴
스피드 보트를 운전하는 가이드 겸 선장은 우리를 킬림 생태공원의 맹글로브 숲, 박쥐 동굴, 독수리 서식지, 킬림 어장 등으로 이끌었다. 투어는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바다에 뿌리를 내린 맹그로브 숲, 원시 자연의 신비를 간직한 동굴들, 적막 속에서 머리 위를 맴돌던 갈색 독수리 떼, 뱃머리로 올라와 아이들을 즐겁게 했던 원숭이 등은 기대하지 않았던 재미난 볼거리였다. 푸껫의 팡아만 투어를 연상케 했지만 조금 더 다채롭다고 할까?
▲ 모래와 물이라면 종일이라도 놀 수 있는 아이들.
투어 후에는 다시 탄중루 비치로 돌아와 물놀이를 했다. 포시즌 리조트, 탄중루 리조트 등 특급 리조트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한 탄중루 비치는 그 명성만큼이나 아름다웠다. 해가 들면 작은 섬들이 옹기종기 떠 있는 바다는 옅은 에메랄드색으로 반짝였다. 잔잔하고 야트막한 해변은 수영하기에도 적당했다. 석회질이 많은 바다는 스노클링 하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었으나 물고기가 없는 건 아니어서 심심하지 않았다. 적당한 나무그늘 아래 싸롱을 몇 장 깔면 랑카위는 바로 지상 최대의 낙원이 됐다.
▲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메리 크리스마스 기념 샷
조금 늦었지만 랑카위의 해변에서 '메리 크리스마스' 기념 샷도 찍어봤다.
마트에서 발견한 철 지난 산타모자를 인원수대로 챙겨 살 때는 타박을 듣기도 했고, 잘 놀고 있는 아이들을 땡볕에 불러 모아 모자를 씌울 때는 좀 힘들었지만 찍어놓고 보니 나름 뿌듯한 인증샷~! 저렴한 어린이용 모자로 샀더니 아버님들 사이즈가 살짝 오버됐던 건 비밀 아닌 비밀이다. ㅋ
Day 5. 랑카위를 대표하는 두 가지, 스카이 캡 전망대와 판타이 체낭
▲ 스릴 만점 곤돌라 덕에 어른들은 무서웠고, 아이들은 낄낄댔던 즐거운 추억(?)
랑카위 여행의 막바지. 뭔가 딱히 한 게 없는 것 같은데 벌써 일정의 반이 지났다.
다시 오리엔탈 빌리지를 찾았다. 이번에는 발 빠르게 움직여 아이들이 그토록 소원하던 스카이캡(케이블 카)을 탔다. 입장 후에도 긴 줄이 이어져 살짝 후회스러웠지만 기나긴 기다림 끝에 결국 케이블 카를 두 번 갈아타고, 해발 700m가량의 맛칭찬(Mat Cincang) 산을 오를 수 있었다. 다행히 전망대에서 보는 랑카위 뷰는 아주 근사했다. 랑카위 뿐 아니라 안다만 해 너머로 태국의 작은 섬들까지 시원한 풍경이 펼쳐졌다.
▲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길이 125m의 스카이 브리지
▲ 해 질 무렵, 낭만 체낭비치
해 질 무렵에는 랑카위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기 아쉬워 체낭비치에서 일몰을 기다렸다.
발리의 꾸따비치를 닮은 체낭비치. 나는 이 무렵의 해변 분위기가 참 좋다. 썬배드에 누운 관광객과 그들 주위를 맴도는 호객꾼 대신, 하루 일과를 마친 사람들이면 누구랄 것 없이 한 데 뒤섞여 일몰을 기다리는 평등함이 좋다. 작열하던 태양의 열기가 사그라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이때, 맥주 한 병만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스러지는 태양을 마주보며 파도타기를 하던 아이가 내게 했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아주 좋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
Day 6. 쿠알라룸프루로
▲ 랑카위를 상징하는 이글 스퀘어, '랑'은 독수리, '카위'는 갈색을 뜻한다고.
왜 여행 막바지가 되면 갑자기 둘러보지 못한 곳이 아쉬워지는 걸까?
챙겨 들르기엔 뭔가 아쉽고, 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이글 스퀘어에 들러 기념사진을 남긴 후 공항으로 향했다.
고속버스 터미널을 연상케 하는 랑카위 공항. 대기는 아주 맑음~!
Day 7. 아주 특별한 뉴이어스 이브
▲ 숙소에서 내려다본 KLCC 공원
드디어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뉴이어스 이브(New Year's Eve)~!
이번 말레이시아 여행을 준비하며 내가 유일하게 욕심냈던 쿠알라룸푸르의 새해맞이 행사를 보는 날이다.
숙소 앞의 KLCC 공원 산책을 하다 보니 화약이 잔뜩 쌓인 곳이 눈에 띄었다. 지키는 안전요원에게 물었더니 역시나 불꽃놀이를 준비 중이란다.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바로 앞에 에어비앤비 숙소를 구한 덕에 웬만한 곳은 걸어 다닐 수 있었다. 저녁으로는 근처 쇼핑몰에서 장을 봐 제대로 요리를 했다. 마늘과 올리브 오일로 재운 고기와 버터를 듬뿍 발라 구운 채소,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온 짬뽕라면 등으로 한 상 거하게 차리고, 모두 함께 치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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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옥상에 올라가 보니 사람들이 북적북적, 은은한 조명과 음악까지 분위기가 좋았다.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많아 우리도 주저 없이 아이들과 함께 물놀이를 하며 새해맞이 준비를 했다.
호화 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루프탑 풀에서 가족과 함께 바라본 도시의 야경, 이방인들과 함께 외친 카운트 다운, 황홀했던 불꽃놀이.
그리고 아름다운 2016년의 시작~!
Day 8~9. 말레이시아 문화에 미혹되다
쿠알라룸푸르에서는 다닌 곳이 많지 않다. 주로 숙소 앞 공원에서 놀거나 쇼핑센터에서 밥을 먹고, 아니면 레지던스 수영장에서 수영을 했다. 셔틀버스를 타고 나간 곳이라고는 고작 차이나 타운과 국립 모스크 정도였는데, 나는 그 길에서 본 옛 기차역과 이슬람 미술박물관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터키에서 본 이슬람 미술이 화려함 자체였다면, 말레이시아의 그것은 단아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생활 속에 녹아든 섬세하고 아름다운 패턴에 시선을 뺏겨 걸음을 뗄 수 없었다.
문득 '비슷해서 재미없다'고 속단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닮은 듯 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어 더 즐겁지 않았던가?
짧은 기간이었지만 동남아시아 지역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인종, 종교, 역사, 문화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어 더욱 의미있는 며칠이었다. 말레이시아는 다음을 기약하고 싶은 여행지~! 앞으로도 계속 쿠알라룸푸르행 프로모션 티켓을 주시하는 걸로... ^^
덧) 부부가 배탈나 골골대는 며칠간(촌스럽게.. --;), 아이들과 생활 전반을 책임져 주신 문짱님 부부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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