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에 대한 단상, 좌충우돌 자라섬 캠핑 후...

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내에 스카우트를 본뜬 '아람단'이라는 토종 단체가 있었다. 청조끼와 청바지를 깔맞춤 하고 베레모까지 눌러 쓴 이들의 목표는 '민족의 통일 번영과 국제사회에 이바지하는 건전한 청소년'이 되는것. '통일'로 거수경례를 하고, 매듭법, 독도법, 응급 처치법 등도 배웠던것 같다. 걸스카우트, 보이스카우트를 필두로 해양 소년단, 우주소년단 등 각종 소년소녀 단체들이 비슷한 활동을 하며 폼을 잡았지만 이순자 여사의 전폭적인 지지와 5공 정권의 비호를 받던 아람단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아람단 활동의 백미 중 하나는 학교 운동장에서 하는 '뒤뜰 야영'. 6~7명의 조원이 숙영지를 편성해 음식을 해먹고 담력훈련, 캠프파이어, 명상의 시간을 가지며 심신을 단련하는 활동이었다. 당시 무남독녀 외동딸이었던 난 부모님의 깊은 관심 속에 아람단에 입단해 야영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합법적인 외박, 설익은 카레, 모닥불 앞에서 훌쩍이던 명상의 시간... 제대로 씻지도, 자지도 못하고 비라도 한번 내리면 난리법석이었지만 어렸기에 그마저도 즐거웠다.  

소선암 오토 캠핑장

시간이 흘러... 캐나다 어학연수 시절(10여 년 전), 토론토에 사시는 작은아버지께서 단풍이 아름답다는 알곤퀸 파크에서의 캠핑을 제안하셨다. 말로만 듣던 알곤퀸 파크는 말이 파크지 깊은 산속이었다. 캠핑이라면 초딩때부터 일가견이 있는 나, 하지만 이런 캠핑장은 처음 봤다. 입장료 받는 산속의 캠핑장, 텐트를 칠 수 있게 다져진 자갈밭, 한켠에는 피크닉 테이블이 구비되어 있고 전기도 쓸 수 있었다. 더 놀라운 건 개수대와 샤워장이 따로 있다는 것. 온수도 콸콸 나왔다. 작은아버지께서 벤 한가득 싣고 오신 짐을 풀어보니 에어 매트, 2버너 스토브 같은 생소한 물건들이 있었다. 콜맨이라는 브랜드도 알게 됐다. 밤엔 곰의 습격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과, 너구리가 아이스박스 속 음식들을 뒤져 먹을 줄 안다는 것도 배웠다. 아... 이런 게 진정한 캠핑이구나.~!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 기간 내 운영됐던 하이트진로 텐트촌

하지만 여긴 한국인걸. 여행하며 노는 일이라면 어디든 나서는 나지만, 성인이 된 후론 왠지 캠핑은 꼬질하고 불편해서 싫다. 배낭여행을 해도 잠자리만은 편해야 하는데, 춥고 습한 텐트 생활이라니. 게다가 요즘의 난 30대 중반, 4살 아이의 엄마, 만삭 임산부가 아닌가! 여름도 아니고, 겨울로 향해가는 이 추운 계절에 은박 돗자리 깔고 궁상맞게 캠핑은 무슨~!

이런 생각도 잠시. 2011년 10월,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이 열린단다. 필진으로 활동하는 하이트 맥주 블로그에서 텐트 숙박권과 재즈 페스티벌 입장권을 제공한다는 연락이 왔다. 마침 한동안 나가지 못해 몸이 근질근질하던 난 '하룻밤인데 뭐~'라는 심정으로 남편을 꼬여 자라섬으로 향했다. 창고에서 썩고 있는 웨버와 차콜 스타터, 코펠, 20년도 넘은 아람단 침낭을 챙겨 들었다. 삼겹살 한 근과 맥주, 햇반과 3분 카레, 김치 등도 챙겼다. 지금 생각해보니 제대로 준비한 건 숯불구이 밖에 없었던 듯. 어렵사리 텐트를 찾고, 바닥에 짐을 늘어 놓으니 어릴 적 아람단 텐트 비슷하다.      

산책로 가로등 아래 은박 돗자리를 펴고 그야말로 '바닥모드'로 저녁을 먹었다. 흔한 BBQ 체어 하나 없이 쪼그려 고기를 굽던 스티브, 달빛에 삼겹살은 익었는지 말았는지, 이따금씩 숯에 기름이 떨어져 불길이 치솟기도 했지만 갈대밭 한켠에서 재즈를 들으며 먹던 숯불향 그윽한 고기는 그렇게 맛날 수 없었다. 평소 밥이라면 인상부터 쓰던 아이도 좋아라 하며 혼자 알아서 잘만 먹는다. 이런게 캠핑의 낭만인건가~ 감상에 젖기도 했다. 그러나 몇시간 후, 감상은 현실 앞에 무력해졌다. 첫 서리가 내리던 그날 밤, 뜬 눈으로 한기와 싸우며 다시금 다짐했다. '날이 밝으면 바로 서울로 올라가리~!' '내 사전에 다시 캠핑은 없다~!'   

다음날 아침. 언제 잠이 들었는지, 따스한 햇살에 눈이 떠졌다. 텐트 지퍼를 올리니 눈앞에 이런 황홀한 광경이 펼쳐졌다. 옆 텐트엔 장작불이 지펴졌다. 50대 중반의 옆 텐트 부부, 장비 하나 없이 자는 우리가 걱정됐다며 불이라도 쬐라고 불러주신다. 운치있게 타들어가는 모닥불 앞에 이야기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캠핑으로 흘렀다. 기본 장비부터 캠핑하기 좋은 계절, 요즘 캠핑 트랜드까지.. 아이들 다 키우고 이제 부부만의 캠핑을 즐긴다는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담과 더불어 캠핑에 꼭 필요한 상식들을 재미나게 짚어주셨다. 키워드만 뽑자면 이런거. '햇빛과 비를 가리는 타프, 추울땐 거실 있는 텐트, 릴렉스 의자와 테이블, 캠프파이어를 위한 화로대, 겨울엔 난로와 써큘레이터, 전기담요, 이소가스 버너가 필요한 이유' 등.

산책을 하다보니 정말 거실과 방이 따로 있는 텐트가 보였다. 텐트 안에 또 텐트를 거는 구조였다. 텐트란 그저 잠을 자는 공간으로만 알고 있었던 내겐 정말 신세계가 아닐 수 없었다. 1박2일 영향으로 전국에 캠핑 붐이 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인이 캠핑장비 마련하느라 기백만원을 썼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내심 그돈 들여 해외여행 한번 더 하지~! 라며 이해하지 못했는데, 집처럼 갖춰진 사이트를 보니 맘이 동한다. 걷다보니 캠핑 트레일러에서 보트, 카약까지 입이 떡 벌어지는 럭셔리한 광경도 보인다. 

게다가 이 아이. 간밤에 정말 추웠는데도 잘 자고, 잘 먹고, TV와 아이패드 없이 자연 속에서 뛰어놀며 웃는 모습을 보니 이런 기회를 자주 만들어 줘야겠단 생각이 든다. 요즘도 보는 사람마다 텐트에서 잤다는 자랑을 하곤 한다는.   

그날 이후, 우리집엔 매일같이 택배 상자가 한두개씩 도착하고 있다. 집에 있는 불용품을 찾아내 팔고, 그 돈으로 하나씩 캠핑장비를 사 모으고 있다. 요즘 부부는 네이버 캠핑 카페에 매복하며 캠핑 후기 읽기에 여념이 없다. 본격적인 캠핑은 둘째가 백일이 되는 내년 봄쯤에 시작하기로 하고, 돌아오는 주말엔 몇 안되는 장비 테스트겸 가까운데라도 나가 보기로 했다. 여전히 텐트도 빌려야 하고, 갖춘 것이라곤 의자와 테이블 정도인 헝그리 캠퍼이지만 오랜만에 느껴본 자연을 잊을 수 없어 캠핑형 인간으로 거듭나기로 했다는. 뼛속까지 추운 밤은 여전이 두렵지만 이제 주말이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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