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에 대한 단상, 좌충우돌 자라섬 캠핑 후...
- 센티멘탈 여행기/한국 구석구석
- 2011. 10. 18. 16:58
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내에 스카우트를 본뜬 '아람단'이라는 토종 단체가 있었다. 청조끼와 청바지를 깔맞춤 하고 베레모까지 눌러 쓴 이들의 목표는 '민족의 통일 번영과 국제사회에 이바지하는 건전한 청소년'이 되는것. '통일'로 거수경례를 하고, 매듭법, 독도법, 응급 처치법 등도 배웠던것 같다. 걸스카우트, 보이스카우트를 필두로 해양 소년단, 우주소년단 등 각종 소년소녀 단체들이 비슷한 활동을 하며 폼을 잡았지만 이순자 여사의 전폭적인 지지와 5공 정권의 비호를 받던 아람단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아람단 활동의 백미 중 하나는 학교 운동장에서 하는 '뒤뜰 야영'. 6~7명의 조원이 숙영지를 편성해 음식을 해먹고 담력훈련, 캠프파이어, 명상의 시간을 가지며 심신을 단련하는 활동이었다. 당시 무남독녀 외동딸이었던 난 부모님의 깊은 관심 속에 아람단에 입단해 야영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합법적인 외박, 설익은 카레, 모닥불 앞에서 훌쩍이던 명상의 시간... 제대로 씻지도, 자지도 못하고 비라도 한번 내리면 난리법석이었지만 어렸기에 그마저도 즐거웠다.
시간이 흘러... 캐나다 어학연수 시절(10여 년 전), 토론토에 사시는 작은아버지께서 단풍이 아름답다는 알곤퀸 파크에서의 캠핑을 제안하셨다. 말로만 듣던 알곤퀸 파크는 말이 파크지 깊은 산속이었다. 캠핑이라면 초딩때부터 일가견이 있는 나, 하지만 이런 캠핑장은 처음 봤다. 입장료 받는 산속의 캠핑장, 텐트를 칠 수 있게 다져진 자갈밭, 한켠에는 피크닉 테이블이 구비되어 있고 전기도 쓸 수 있었다. 더 놀라운 건 개수대와 샤워장이 따로 있다는 것. 온수도 콸콸 나왔다. 작은아버지께서 벤 한가득 싣고 오신 짐을 풀어보니 에어 매트, 2버너 스토브 같은 생소한 물건들이 있었다. 콜맨이라는 브랜드도 알게 됐다. 밤엔 곰의 습격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과, 너구리가 아이스박스 속 음식들을 뒤져 먹을 줄 안다는 것도 배웠다. 아... 이런 게 진정한 캠핑이구나.~!
하지만 여긴 한국인걸. 여행하며 노는 일이라면 어디든 나서는 나지만, 성인이 된 후론 왠지 캠핑은 꼬질하고 불편해서 싫다. 배낭여행을 해도 잠자리만은 편해야 하는데, 춥고 습한 텐트 생활이라니. 게다가 요즘의 난 30대 중반, 4살 아이의 엄마, 만삭 임산부가 아닌가! 여름도 아니고, 겨울로 향해가는 이 추운 계절에 은박 돗자리 깔고 궁상맞게 캠핑은 무슨~!
이런 생각도 잠시. 2011년 10월,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이 열린단다. 필진으로 활동하는 하이트 맥주 블로그에서 텐트 숙박권과 재즈 페스티벌 입장권을 제공한다는 연락이 왔다. 마침 한동안 나가지 못해 몸이 근질근질하던 난 '하룻밤인데 뭐~'라는 심정으로 남편을 꼬여 자라섬으로 향했다. 창고에서 썩고 있는 웨버와 차콜 스타터, 코펠, 20년도 넘은 아람단 침낭을 챙겨 들었다. 삼겹살 한 근과 맥주, 햇반과 3분 카레, 김치 등도 챙겼다. 지금 생각해보니 제대로 준비한 건 숯불구이 밖에 없었던 듯. 어렵사리 텐트를 찾고, 바닥에 짐을 늘어 놓으니 어릴 적 아람단 텐트 비슷하다.
그날 이후, 우리집엔 매일같이 택배 상자가 한두개씩 도착하고 있다. 집에 있는 불용품을 찾아내 팔고, 그 돈으로 하나씩 캠핑장비를 사 모으고 있다. 요즘 부부는 네이버 캠핑 카페에 매복하며 캠핑 후기 읽기에 여념이 없다. 본격적인 캠핑은 둘째가 백일이 되는 내년 봄쯤에 시작하기로 하고, 돌아오는 주말엔 몇 안되는 장비 테스트겸 가까운데라도 나가 보기로 했다. 여전히 텐트도 빌려야 하고, 갖춘 것이라곤 의자와 테이블 정도인 헝그리 캠퍼이지만 오랜만에 느껴본 자연을 잊을 수 없어 캠핑형 인간으로 거듭나기로 했다는. 뼛속까지 추운 밤은 여전이 두렵지만 이제 주말이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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