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쯤 발리] 2일차, 아빠는 서핑중

발리에서의 첫 하루가 항공여행의 여독을 풀고, 한 달 동안 여행생활자로서 지낼 준비를 하며 보낸 시간이었다면 오늘부터는 진짜 발리에서의 삶을 시작하는 날이다. 고작 이틀 지났는데, 지독하게 추운 겨울이 언제였나 싶다. 이따금씩 숙소 로비나 상점에서 보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지금이 12월임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예기치 못했던 사건으로
서핑스쿨 일정을 미룬 스티브는 오늘부터 2주간 하루 두 번씩 바다에 나가게 되었다. 서핑은 말 그대로 '파도를 타는 것'이기 때문에 파도와 물때가 중요하다. 요즘 발리의 꾸따비치는 새벽 6시와 오전 11시 즈음이 밀물이라는데, 이말은 즉, 새벽 6시와 오전 11시에 수업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새벽수업을 다녀온 스티브와 함께 아침을 먹고, 오후 수업은 한번 따라가 보기로 했다.
다이빙과 달리 서핑수업은 해변에서 진행되기에 얼마든 바다에서 놀며 구경이 가능하다. ^^



오늘 발리 날씨는 '맑음'~!



꾸따비치는 서핑을 막 시작한 초보자가 타기 좋은 잔잔하고 힘있는 파도가 있는 해변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주변에 서핑스쿨도 많고, 장기체류하는 서퍼들을 위한 저렴한 교통, 숙박, 먹거리 등 여행 인프라도 잘 구축되어있다. 서핑은 해변에서 즉석으로도 배울 수 있지만, 지인들이 권하기를 정식 스쿨에 일주일 이상 등록해 제대로 배우는 것이 좋다고 해 스티브는 2주를 등록했다. 들은 얘기로는 1주는 꾸따비치에서 자세, 패들링, 파도를 타는 방법 등을 배우고, 2주차에는 다른 해변으로 이동해 '라인업'이라 불리는, 파도를 타고 옆으로 이동하는 방법을 배운다고.



한국에 있을 때부터 '서핑에 빠지다 - 이규현 저' 책 속의 일러스트를 보며 마룻바닥에 엎드려 테이크오프 자세를 연습하던 우리. ㅎ
특히 스티브는 오늘을 위해(?) 5개월간 수영까지 배웠다. 수영을 못해도 괜찮지만, 잘 하면 확실히 도움이 된다는데...
과연, 잘 할 수 있을 것인가...!



열심히 스티브의 모습을 담다가 인기척이 느껴져 돌아보니 어린이 1호 등장.
햇빛이 너무 뜨거워 파라솔을 빌려 아이들을 앉히고 과자 한 봉지씩을 들려줬는데, 멀어져가는 아빠의 모습이 궁금했는지 앞으로 슬그머니 걸어 나왔다. 



그리고는 파도가 쳐 바닷물이 발에 닿을 때마다 간지럽다며 까르르 웃는다. 요즘 부쩍 웃음이 (더불어 땡깡도..;) 많아져 예쁜 아이.



"엄마! 내가 엄마를 몇 번 불렀는지 알아?!"
어린이 2호 등장.





우리는 말라가(스페인)의 해변과 똑 닮은 꾸따비치에서 거뭇거뭇하고 쫀득한 모래를 뭉치며 소꿉놀이에 빠져들었다. 




끊임없이 치는 파도, 파도를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들, 그 위로 발리에 착륙하는 비행기까지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한참을 앉아 모래놀이를 하다가 바다로 물을 길러가던 진아가 소리쳤다. "엇! 아빠다, 아빠!!" 주춤주춤 정균군이 일어섰다.



아빠의 등장~! 어느새 저만치 멀어져 힘차게 패들링중이었다.



아니, 저건 책에서만 보던 테이크 오프 자세?!


하나, 둘,


셋~!


"와~! 아빠~~~~!!"
아이들은 넋을 놓고 아빠를 바라봤고, 나는 고속연사로 열심히 그의 모습을 담았다.


서핑 수업 첫날이라고 믿을 수 없는 광경. 오늘 하루는 모래밭에서 자세 연습만 하는 줄 알았건만~!
혹시, 숨겨진 서핑 본능이 발현된 건가? @.@
오버인줄은 알지만,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덩달아 으쓱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오후 수업에서 두 세번 일어선 이후로는 기력이 달려, 계속 물을 먹고, 파도에 휘말려 세탁기 통 처럼 돌아 모래 바닥에 머리를 쳐박는 사고까지 있었다고 한다. ㅠㅠ 그렇지... 뭐든 쉬운 게 없다.




꾸따비치에만 벌써 네 번째인데, 늘 부기보드를 타거나 지는 해를 보며 맥주만 마시다가 서핑을 배워보기로 마음먹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마음은 먹어봤지만, 늘 짧게 떠났었기에 배워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다이빙과 더불어 늘 버킷리스트로 가지고 있었던 서핑, 스티브가 먼저 꿈을 이루는 모습을 보니 뭉클하기까지 하다.
그가 과정을 마치면, 나도 단기 코스라도 한 번... ^^

내일도 우리는 꾸따비치로 향할 예정이다.

###


[관련 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