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뚫고 다녀온 3박4일 남해여행 스케치

양동이로 퍼붓는 듯한 엄청난 양의 폭우, 천둥 번개와 벼락을 동반한 장대비. 벼르고 별러온 여름휴가 하루 전날, 목적지인 남해군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예사롭지 않은 장맛비에 주변의 걱정이 이어졌다. 한반도의 남쪽 끝, 서울에서 남해까지의 이동거리는 무려 400Km, 논스톱으로 달려도 5시간이나 걸리는 먼 곳인데 이 빗길에 꼭 가야겠냐는 거였다. 우려 속에 떠난 여행... 예상대로 가는 길은 험했고, 난생처음 산사태를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폭우를 뚫고 도착한 남해는 그렇게 푸르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는~

  DAY 1   서울 - 전주 한옥마을 - 남해대교 - 숙소 (남해 힐튼)

장마전선의 중심인 '부여'에서 시간당 50mm의 장대비를 경험하는 중. '억수같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법한 풍경이다. 천안을 지날때만 해도 산등성이를 덮은 짙은 운무를 감상하며 정취에 취해 있었는데, 터널 하나를 지나니 운무에 바람이 더해 그대로 비가 되어 쏟아진다. 도로 곳곳은 물에 잠겼고, 차들은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비상등을 깜빡이며 천천히 물웅덩이를 지난다. 맞은편 차가 지나갈 때 마다 중앙분리대 너머로 빗물이 튀기도 하고,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도로는 지뢰밭 같았지만 노련한 운전자의 헌신으로 나름 운치 있는 여행길이 되었다.   

세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전주 한옥 마을.

폭우에 걷기조차 어려웠지만 기어이 예약해둔 한정식집을 찾아내 주린 배를 채웠다. 명성만큼 맛이 좋진 않았지만 안채에 앉아 마당으로 떨어지는 낙숫물을 바라보며 즐기는 식사는 여행의 정취를 더했다.  

이 좁은 땅덩이에 산이 어찌나 많은지, 또 그 산을 파서 얼마나 많은 터널을 만들었던지, 전주에서 남해가는 길은 절반이 터널같은 느낌이다. 우리나라, 정말 토목산업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겠다는... 평소같으면 어두운 터널이 싫기만 했을 텐데 오늘 같은 날은 비를 피할 수 있어 반갑기만 하다. 마지막 터널을 지나고 얼마쯤 달렸을까. 300m만 더 가면 남해라는 이정표와 함께 거짓말처럼 파란 하늘이 나타났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 임진왜란의 마지막 격전지로 이순신 장군이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며 순국한 곳으로 유명하다. 유적도 유적이지만 관광안내소가 있어 지도며 여행안내를 받을 수 있어 좋다.

해안도로를 따라 어디서나 흔하게 만날 수 있는 풍경. 다시 날씨가 흐려져 낙조를 볼 수는 없었지만 비릿한 바다내음과 고요함이 남해에 왔음을 실감케 한다.

창 밖으로 바다와 산등성이, 멀리 여수, 광양까지 보이는 호텔의 전망 좋은 객실에 자리를 잡고 첫날밤을 보낸다. 

  DAY 2   다랭이 마을 - 상주 은모래 비치 - 독일마을 - 물건방조어부림 - 창선교 원시어업죽방렴

누가 내게 남해 제일의 풍경을 얘기하라면 단연 '가천의 다랭이 논'을 꼽겠다. 언덕에서 바다로 굽이굽이 이어지는 계단식 논, 바다와 맞닿은 곳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쌓인 바위 섬들이 어우러져 기막힌 장관을 연출한다. 세계 어디에 이런 멋진 풍경이 있겠나... 계단식 논으로 유명한 발리의 우붓? 이곳에 댈게 아니다.     

이번 여행의 소득중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수국을 원 없이 봤다는 거다. 집집마다 거리마다 탐스럽게 핀 수국 꽃이 어찌나 많던지, 노지에서 피어난 색색의 아름다운 수국을 보는 재미에 몇 번이고 차를 세우고 걸음을 멈췄다.

어제부터 '바다'를 외치던 딸내미를 위해 일정을 수정해 들른 상주 해수욕장. '상주 은모래 비치'라고도 부르는 고운 모래의 폭신한 느낌이 좋은지, 아빠와 딸내민 신발을 벗어들고 신나게 달린다. 그 뒷모습이 예뻐 사진을 얼마나 찍어댔는지... ㅎ

멀리 물건방조어부림이 보이는 독일마을. 물건방조어부림은 바닷바람과 조류를 막기 위해 조성한 울다리형 바다숲인데, 독일마을에서 보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 붉은 기와지붕으로 아이덴터티를 살린 독일마을은 특색있긴 했으나 몰려드는 관광객 때문에 더운 날씨에도 창문을 굳게 걸어 잠궈야만 하는 그들의 삶이 안타까웠다는.   


  DAY 3   원예예술촌 - 남해 시장

꽃 좋아하시는 엄마와 함께한 이번 여행, 어제 (월요일)에 휴관했던 원예예술촌에 들르기 위해 다시 독일마을로 향했다. 원예예술촌은 20여 명의 원예전문가가 모여 실제 살 집과 정원을 작품으로 가꿔 조성한 마을인데, 인공적으로 꾸민 곳이긴 하지만 고즈넉한 정원 길을 걷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우연히 탤런트 박원숙 씨를 만났다. 드라마 '최고의 사랑'에서 윤필주(윤계상)의 어머니 역으로 출연해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던 그녀는 이곳에 25평 남짓 되는 아기자기한 별장을 짓고 '카페베네'로 운영하고 있다.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고, 따뜻하게 말을 붙이는 그녀... 덕분에 추억 하나가 더 생겼다.

남해시장은 통영의 중앙시장이나 서호시장만큼 특색있진 않았다. 지방의 여느 작은 시장 같은 분위기. 찰옥수수와 간단한 간식거리 몇가지를 사들고 리조트로 돌아와 아이와 즐거운 물놀이를 즐겼다. 온 종일 햇빛을 받은 수영장 물은 적당히 따뜻했고, 착시현상으로 멀리 바다와 이어진 듯한 뷰에남국의 리조트에라도 와있는 기분으로 즐겼다. 

폭우를 뚫고 왔지만, 내내 맑았던 지난 몇 일. 저녁 산책길엔 서울에서는 드문 푸른 밤 하늘과 총총히 뜬 별도 봤다. 북두칠성을 시작으로 별자리 찾기도 하고, 모기에 물리는 줄도 모르고 야경 감상에 여념이 없었단.

  DAY 4   남해 - 서울

우리가 떠나는 날을 알기라도 하는건지. 새벽부터 비가 내리더니 올라오는 내내 비가 따라다닌다. 궂은 날씨에 남해 제일의 경치라는 보리암을 포기하고 서둘러 서울로 돌아오는 길. 다음을 기약했지만, 다시 이 먼 길을 달려 갈 엄두가 안난다. 11시에 출발했는데, 집에 도착하니 벌써 오후 5시. 장마 피해 상황을 알리는 뉴스에 마음에 편치 않다. 꿈같던 지난 몇일이 가고 다시 일상...   

남해에서 맛본 음식들

왼쪽 위부터 멸치쌈밥, 자연산 회, 갈치구이, 물회. 모두 맛집이라는 곳을 검색해서 찾아갔는데, 기대치가 너무 높았는지 맛도 서비스도 그닥 만족하지 못했다. 남해 식도락 여행으로는 남해군보다는 통영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 바닷가 마을이라 어업이 주를 이룰것 같지만 다니다보면 논밭이 많고, 유명 식당들은 대부분 관광객을 상대로 하고 있다. 먹거리에 아쉬움이 많았던 여행이라 다음에 남해 여행을 다시 간다면 맛집 말고 동네 작은 식당들로 다녀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세한 얘기는 차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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