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숙소에서의 하룻밤 - 샤프란 볼루

여행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낯선 곳에서 잠자기'가 아닐까. 내 몸의 껍질처럼 익숙한 침대와, 방과, 집과, 도시를 떠나 낯선 이들의 흔적으로 가득 찬 다른 도시, 다른 집, 다른 방, 다른 침대에서 잠든다. 불편하지만 고된 일정으로 노곤한 몸은 빠르게 잠으로 빨려 들어가고, 문득 새벽에 눈을 떴을 때 발견하는 것은 낯선 잠자리에 물든 낯선 나, 혹은 나에게 물든 낯익은 잠자리다. - '여행자의 로망 백서' 中

여행자에게 좋은 잠자리란 깨끗한 침대 이상의 의미가 있다. 특히 홀로 떠난 배낭여행객에게 숙소는 지친 몸을 누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자 잠시나마 무거운 짐을 보관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다. 친구를 사귀기도 하고 먼저 다녀간 이들이 남긴 방명록이나 메모를 보며 가이드북에는 없는 주변 여행지에 대한 생생한 정보를 얻기도 한다. 운이 좋다면 다음 목적지까지 함께할 동행을 구할 수도 있다. 

어떤 잠자리는 독특한 체험을 할 수 있어 자체가 여행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터키에서는 교도소 건물을 개조한 이스탄불의 포시즌스 호텔이나 애거서 크리스티가 '오리엔털 특급 살인사건'을 쓴 페라팰리스 호텔, 수도사들의 은신처로 쓰였던 카파도키아의 동굴들, 그리고 19세기 오스만 가옥을 그대로 보존한 샤프란 볼루의 전통가옥은 한 번쯤 체험해 보고 싶은 잠자리였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펜션에서 마중나온 할아버지가 운전하는 낡은 차를 타고 울퉁불퉁한 돌길을 삐걱거리며 샤프란볼루 시내에서 4Km 정도 떨어진 치르시 마을에 도착했다. 펜션까지 가는 길에는 나지막한 오스만식 가옥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는데, 목조 건물에 붉은 기와지붕을 얹고 흰색으로 벽을 칠한 아름다운 집들은 정말 듣던대로 시간이 멈춘 동화 속 마을이었다.

펜션에 도착해 나무로 만든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헛간 같은 공간이 보인다. 

식탁들이 있는 것으로 봐서는 식당 겸 로비인 것 같은데, 마차 바퀴나 쟁기 같은 옛 물건들을 그대로 인테리어 소품으로 사용해 고풍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겼다.

좁다란 나무 계단에 깔린 카펫, 격자무늬 장식의 천장, 소품 하나하나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2층으로 올라가니 개조된 몇 개의 방들이 있었다. 우리가 묵을 곳은 트윈배드가 있는 펜션에서 가장 따뜻하다는 방. 

코지한 작은 방에는 손으로 짠듯한 꼭 맞는 커튼이 정갈하게 걸려 있었고, 폭 파묻혀 언제까지라도 잘 수 있을 것 같이 포근해 보이는 침대와 이 집과 잘 어울리는 붉은 체크무니 담요가 있었다.
 
손잡이, 전등, 열쇠 하나하나에 소박하지만 클래식한 멋이 묻어난다.

침대 머리맡에 있는 세 개의 창문은 모두 이중창 구조인데, 안쪽은 유리로 되어있고, 바깥은 맞은편 집에서 보이는 것처럼 나무로 되어 있다. 잠금장치도 모두 나무를 깎아 만들었다.

욕실은 꽤 현대적이고 깔끔했다. 정말 작은것 하나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없었다. 샤프란볼루에서는 이런 전통가옥의 숙소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데 중요한건 이런 멋진 펜션이 인당 20TL(약 16,000원)의 놀라운 가격이라는 것!. 비수기임을 고려해도 새벽의 얼리 체크인과 픽업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정말 시골동네에서만 기대할 수 있는 인심 좋은 가격과 서비스가 아닌가. (이스탄불에서는 남녀가 섞여 자는 퀴퀴한 지하 도미토리의 2층 침대 정도 구할 수 있는 가격)

늦은 아침, 숙소를 나서며 찍은 골목길 풍경. 전날 내린 비로 하늘은 더없이 맑았고, 치르시마을을 붉은 지붕은 파란 하늘과 대비를 이루며 더욱 예쁘게 빛났다. 터키의 전통가옥들은 대부분 2층의 목조건물로 내부에 베란다를 만들어 2층이 1층보다 조금 앞으로 튀어나와 있다. 흰색 벽에 작은 창문을 여러 개 만들어 놓아 마치 장난감 집처럼 재밌는 모습이다.

(좌) 다음날 아침 먹은 전형적인 터키식 아침식사. '터키식 아침식사'에는 양젖으로 만든 치즈, 토마토, 오이, 올리브와 에크맥(바게트같은 빵), 몇가지 잼, 삶은 달걀 그리고 차이가 포함된다. 여느 호텔에서 제공되는 어메리칸 브렉퍼스트와는 차원이 다른 건강한 식단~!

(우) 늦은 저녁 하맘(터키탕^^)에 다녀와 보니 로비에 오렌지 향이 가득. 프런트에서 일하는 '알리'가 한 손에 작은 과도를 쥐고 열심히 오렌지를 깎아 먹고 있었다. 모른 척 방으로 올라가려는데 친절한 그, 우리는 불러세우더니 과일 한 바구니를 내온다. '오렌지 먹을래요?'라고 물었을땐 정말 오렌지 하나를 기대했는데 정겨운 시골 인심에 쓰나미처럼 감동이 밀려온다. 그날 밤 우리는 에페스 맥주를 기울이며 많은 얘길 했다는~ (이후 다른 곳에서도 몇 번 과일을 대접 받은 적이 있는데 터키에서는 저렇게 과일과 과도를 함께 내와 각자 깎아 먹는 것이 보편적인 듯했다.)

옛 오스만 시대의 모습을 간직한 샤프란볼루에는 19~20세기 초에 건축된 전통가옥이 2,000채 정도 남아있다. 마을전체가 1994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그중 800채가 법적 보호를 받고 있다고. 터키 예술가들과 사진가들에 의해 주목받기 시작한 샤프란볼루는 최근 들어 가볼 만한 여행지로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 소박하고 아름다운 마을이 관광객들에 의해 때묻지 않기를 바라본다.

[숙소 정보]
* 갈라파토글루 펜션 (KALAFATOGLU KONAK OTEL) 
   Tel: (0370) 725-2411, 2270
   가는 방법: 샤프란볼루 크뢴퀘이에서 펜션 픽업
   가격: 인당 20TL (겨울 비수기 가격 - 터키식 아침식사, 핫샤워, 라디에이터, 에어컨 포함)
   장/단점: 깨끗함은 말할것도 없고 흐드를륵 언덕이나 진지한, 진지하맘 같은 주요 볼거리 모두 도보 가능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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