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멎을 듯 아찔한 선셋, 발리 더블식스 비치


활기 넘치는 거리에 레스토랑과 카페, 인테리어 디자인 숍, 부티끄 등이 늘어서 있어 발리의 청담동(이제는 꾸따비치 저리가랄 정도로 번화해 청담동 보다 명동에 비유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지만)이라고 불리는 스미냑 지역,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레스토랑과 비치클럽이 모여있는 곳은 디아나푸라(Dhyana Pura) 거리 = 더블식스 거리'에 있는 더블 식스 비치 (66, Double Six Beach)'다. 더블 식스 비치는 특히 일몰이 아름다워 선셋 포인트로 유명한데, 그래서인지 발리를 대표하는 고급 레스토랑인 쿠테타, 가도가도, 밤이 되면 핫한 클럽으로 변신하는 코쿤과 루프탑 바 등이 모두 이곳에 있다.



주머니 가벼운 배낭여행자이거나, 아이와 함께라 격식 차려야 하는 레스토랑이 부담스러운 가족이라도 괜찮다. 더블식스 비치에는 맥주 한 잔만 주문해도 해변의 샌드백에 마음껏 늘어져, 혹은 모래놀이를 하며 일몰을 기다릴 수 있는 비치바가 있으니까.



500m 정도 이어진 더블식스 비치에는 라플란차(La Plancha), 크리스탈 팰리스(Cristal Palace), 참풀룽(Champlung) 등 10여 개의 크고작은 바들이 알록달록한 샌드백을 내놓고 해질 무렵 감성을 더하는 음악을 흘린다. 몇몇 바에서는 밴드가 장비를 세팅하며 라이브 공연 준비를 한다.



사실 이곳은 조용히 누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해변은 아니다. 낮에는 서퍼들로, 저녁무렵에는 선셋을 보려는 사람들로 늘 북적이기 때문.
자리에 30분만 앉아있으면, 이곳에서 영업하는 행상의 종류를 모두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조금 귀찮은 곳이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웨스턴 일색인 고급 레스토랑보다 현지인과 외국인 관광객이 함께 어울려 발리의 석양을 바라볼 수 있는 비치 바에 더 정이 간다. 잠시 머물 예정이었던 우리는 비치 바보다 더 저렴한 로컬 바에 자리를 잡았다.




샌드백이 이렇게 많은데 왜 의자에 앉았냐고?
20여 일간 매일 발리 해변을 다니다보니 자리에는 몇 가지 등급과 규칙(?)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1. 발리의 공용 해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푹신한 썬베드는 햇빛을 피할 수 있고, 아이들 낮잠도 재울 수 있어 유용하지만 해질 무렵이면 철수하기 시작해 선셋을 보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자릿세는 한 시간이든, 하루 종일이든 50,000Rp, 비/성수기, 네고 능력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외부음식 반입 가능


2. 샌드백과 엄브렐러가 있는 비치 바는 고급 레스토랑보다는 저렴하지만, 그래도 발리물가 치고는 나름 가격대가 있다. 아이와 함께 해변에서 놀며 선셋도 보고 저녁도 해결할 생각이라면 추천하고픈 방법. 실제로 해변까지 유모차를 끌고 온 가족도 여럿 봤다. 바나나 스무디 35,000Rp+Tax, 외부음식 반입 불가.


3. 햇빛이 비춰도 괜찮고, 저녁 생각도 없고, 잠시 일몰을 보며 맥주 한 잔 하고픈 여행자라면 비치 바 사이에 있는 앉은뱅이 의자를 노려보는 것이 좋다. 주로 인도네시아 로컬 피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곳은 비치 보이에게 음료값만 내면 하루 종일도 앉을 수 있는 자리. 어느 해변, 어느 자리를 불문하고 맥주 한 병 가격은 25,000Rp (0하나를 빼면 원화 가격), 콜라는 10,000Rp다. 음악은 바로 옆의 비치 바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서리해 듣고, 맥주와 음료는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는 일종을 꼼수랄까. 외부음식 반입 가능. 근처 와룽이나 노점에서 나시짬뿌르, 박소 등을 봉쿠스(포장)해와도 좋다.



우리는 안주로 행상에서 파는 찐 땅콩을 샀다. 외국인 바가지를 더해 한 봉지에 20,000Rp. 선뜻 아이들과 사진 촬영도 제안해 주고, 땅콩도 듬뿍 담아줘서 이천 원이 아깝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번쩍번쩍 불이 들어오는 왕관도 하나씩 씌워줬다. 선셋에는 별 관심 없는 아이들. 하지만 땅콩 까는 재미에 푹 빠졌다.


인도네시아 땅콩은 우리와 모양이 좀 다르다. 애벌레 같지만, 맛은 최고~! 짭짤하고 고소한 것이 입 짧은 진아도 계속 집어먹게 만드는 맛이었다.


아이들이 집중해 땅콩을 까먹는 사이, 일몰이 시작됐다. 빈땅을 한 병씩 든 스티브와 나는, 인도양을 향해 치얼스~!








우기이지만 낮에 비가 와서 더 맑아진 하늘이라 그랬을까? 숨이 멎을듯 아찔한 선셋을 앞에 두고 우리는 말을 잊었다.
붉게, 그리고 핑크빛으로 번져가는 노을을 보며 이제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발리 생활이 아쉬워졌다.


여명이 사라질 무렵부터 비치클럽의 음악은 높아만 간다.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종일을 해변에서 보낸 피곤한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 시간.
언제일지 모르는 다음을 또 기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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