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제국의 소박한 시골마을, 사프란볼루를 내려다보다

'터키'하면 1,600년간 세계를 호령했던 옛 오스만 제국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블루모스크, 아야소피야, 술탄이 살던 궁전은 모두 대단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 이스탄불은 도시 자체가 하나의 박물관이라고 할만큼 멋진 곳이다. 하지만 나는 박물관에 있는 보석보다는 소박한 서민들의 삶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택한 여행지가 샤프란볼루. 오스만 시대의 전통가옥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아름다운 마을로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재다. 터키를 여행하고 온사람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곳이긴 하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그곳은 '시간이 멈춘 동화속 마을'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멋진 곳이었다.
  
흐드를륵 언덕에서 바라본 치르시 마을.

늦은 아침, 창문을 열고 오래된 동네에서만 느낄 수 있는 푸근함을 즐겼다. 혹시나 맞은편 집에서 히잡을 쓴 여인이 기지개를 켜며 자주색 커튼을 열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일어났니? 라고 묻는듯한 얼굴로 인사를 건네는 펜션 주인 Hak. 말수가 적어 꼭 필요한 대화만 몇마디 나눠봤지만 펜션 주인이라기 보다는 그냥 과묵한 동네 할아버지 같아 더 좋았다.  

샤프란볼루에서 주어진 짧은 하루. 뭘할까 고민하다가 Hak 할아버지가 추천하는 이름도 재밌는 '흐드를륵 언덕'에 올라보기로 했다. 흐드를륵 언덕은 이 나지막한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전통가옥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같은 곳이다.

'언덕길'이라고 해서 좌우로 잡초가 우거진 넓은 흙길을 상상했는데, 보도블럭과 오스만식 돌길이 이어진 가파른 골목길이었다. 길 중간중간에는 조금씩 다른 모양의 전통가옥들이 있고, 실제로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널어놓은 빨래나 가축을 키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한참 멀게만 느껴지는데 걷다보면 이상하리만치 금방 그곳에 와있다. 마법에라도 걸린듯한 느낌.

정상에 오르면 의외로 잘 가꿔진 넓은 공원이 있다. 유네스코에서 마을 전체를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는 내용의 안내문도 읽어볼 수 있다. 

넋을 잃고 팔각 성냥갑 같은 집들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왜 팔각 성냥이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붉은 지붕 때문인가...), 어디선가 여자 하나가 나타나 티켓을 권한다. 재생지에 인쇄된 티켓도 소박한 마을을 닮았다.


난간에 앉아 천천히 흐르는 구름과 바람, 햇살을 느끼며 우리는 눈을 감고 한참을 말없이 앉아있었다. 문득 떠오르는 노래 하나가 있었는데, We were both young when I first saw you. I close my eyes and the flashback starts. I'm standing there on a balcony of summer air. 로 시작하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러브스토리. 잔잔한 어쿠스틱 기타소리가 바람을 느끼게 해서였을까...

언덕을 내려와서는 가이드북에서 추천하는 전통가옥과 카라반과 낙타가 쉬어가던 진지한을 둘러보기로 했다.

터키 사람들은 대부분 정말 친절하다. 대부분은 영어를 잘 하지 못하지만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한다. 잘 안되면 이스티크랄 거리에서처럼 직접 데려다주기도... 어차피 영어로 통하지 않으니 한쪽은 터키어로, 한쪽은 한국어로 길을 설명한다. '이렇게 두갈래 길이 나오는데 왼쪽 길로 가면 되는거야.'라고 설명하는 아저씨.
 
마을에서 가장 부유했던 집 한채는 박물관으로 개방되어 있다. 가장 부유한 집이라고 해도 약간의 정원이 있는 조금 큰 집일뿐 생김새는 비슷했다. 각 방마다 벽장이 잘 갖춰져 있었고 심지어 욕실까지 벽장속에 있었다.


진지한은 낙타를 몰고 실크로드를 횡단하던 상인들의 숙소로 쓰였던 곳으로 현재도 그모습 그대로 호텔로 사용하고 있다. 가운데 우물같은 곳은 낙타를 풀어놓고 물을 먹이는 장소였다고.

2TL(가물가물) 정도의 입장료를 내면 호텔에서 묵지 않아도 직원의 설명을 들으며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진지한 호텔 옥상에서 바라본 마을 풍경. 봉긋한 가슴형상을 한 두개의 돔은 소위 '터키탕이라 불리는 '하맘'이다. 터키탕에서의 추억은 차차 풀어놓을 예정.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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