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가 드나들던 선술집에서 맥주 한 잔, 4GATS (콰트로 가츠)
- 센티멘탈 여행기/한 달쯤, 스페인
- 2014. 10. 1. 12:05
바르셀로나의 피카소 미술관에서 유독 내 눈길을 끌던 작품이 있었다. 로트렉의 '물랑루즈'를 연상케 하는 포스터 연작이었다. 4GATS(콰트로 가츠) 라고 쓰여진 그림 옆에는 '젊은 피카소가 자주 찾던 바르셀로나의 카페'라는 설명이 있었다. 4GATS라는 단어는 피카소 미술관의 다른 작품을 설명하는 글에도 자주 등장했는데, 이를테면 이곳을 드나들며 만난 친구들의 초상화, 이곳에 전시했던 '임종의 순간' 같은 작품에서다.
▲ 왼쪽은 4GATS의 현재 모습, 오른쪽은 피카소가 그린 4GATS 포스터. 작품 속 4Gats의 모습은 현재도 그대로 남아있다.
스페인 예술가가 세운 프랑스식 선술집
▲ 19세기 예술 카페의 정취가 느껴지는 4GATS
19세기 말,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지만 엄격한 미술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피카소는 4GATS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당시 이곳은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을 동경하던 카탈루냐 미술가와 작가들이 문화를 논하는 장소였다. 그도 그럴 것이 '네 마리 고양이'라는 뜻을 가진 4GATS는 파리의 '르 샤 느와르(Cabaret Le Chat Noir - 검은 고양이)'라는 클럽을 본따 만든 카페였기 때문이다.
르 샤 느와르의 웨이터이자 공연 진행자로 일하던 페레 로메우(Pere Romeu)는 고향인 바르셀로나에도 예술가들이 모이는 비슷한 장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저렴하고 맛있는 음식을 팔지만, 피아노 음악과 그림이 있는 선술집을 구상했다. 그의 의견에 동조하는 화가 라몬 카사스(Ramon Casas)와 몇몇 친구들이 투자를 했고, 1987년 6월 12일, 바르셀로나 의 한 골목에 콰트로 갓츠가 문을 열었다.
이후 가우디, 호앙 미로를 비롯한 스페인의 유명한 예술가들이 4GATS의 단골이 되었다. 1899년에는 17살의 어린 피카소가 4GATS에 드나들며 그린 친구들의 초상화 50여 점을 모아 역사적인 첫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피카소는 가끔 외상 대신 그림을 그려 주기도 했는데, 4GATS의 메뉴판에 쓰인 포스터도 이때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피카소가 그림을 그리고 예술을 논하던 이 카페는 현재도 바르셀로나의 고딕지구에서 옛 모습 그대로 영업중이다. 사실 가난한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남는 장사를 하지 못했던 4GATS는 1903년 재정난으로 한번 문을 닫았었다. 다행히 1970년대 말, 바르셀로나의 의식있는 외식 사업가들이 이곳을 인수해 지금의 모습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피카소의 자취를 따라 4GATS로
▲ 4GATS가 있는 이 범상치 않은 건물은 바르셀로나의 유명한 건축가인 '호셉 푸이그'가 설계한 건축물, 카사 마르티(1896)다.
19세기의 카페, 그것도 어디엔가 무명 시절 피카소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라니~! 나름 미술학도로 학창시절을 보낸 나는 피카소가 머물던 카페에서, 그가 마시던 음료를 주문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흥분했다. 그러나 천방지축 아이들과 함께 이미 미술관에서 진을 뺀 후였다. 마음은 4GATS로 향했지만, 숙소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다음날은 바르셀로나에서 발렌시아로 넘어가는 고된 일정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 후로 한동안은 4GATS를 잊었다. 말라가에서 다시 피카소의 생가를 방문하기 전까지...
말라가에 있는 피카소의 생가에 가보니 다시 4GATS가 떠올랐다. 그가 비둘기 시리즈를 그리던 방에 놓인 화구와 이젤을 보면서도 어린 피카소가 아버지를 따라 바르셀로나로 가는 풍경이 그려졌다. 4GATS에서 파리의 꿈을 키우던 그는, 1900년대 초에 정말 파리로 건너 가 청색시대, 장미빛 시대, 큐비즘 시대까지 다양한 예술적 시기를 보내게 된다.
▲ 네 마리 고양이라는 뜻의 4GATS(4CATS) 간판
개인적으로 이번 스페인 여행은 피카소의 자취를 따라 다니며 그의 인생과 작품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한 달간의 스페인 여행을 마치고 다시 바르셀로나로 돌아왔을 때는 자연스럽게 4GATS로 걸음이 이어졌다.
피카소의 손 때 묻은 자리에서 마시는 생맥주 한 잔
▲ 19세기 예술가들의 보헤미안적인 숨결이 묻어있는 4GATS의 실내 풍경.
▲ 19세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인테리어와 식탁. 여기 어딘가에서 피카소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겠지.
▲ 4GATS에서 가장 안쪽에 있는 정찬식당. 이곳이 바로 피카소의 첫 전시회가 열린 역사적인 방이다.
마침 둘째군이 잠들어 오붓하게 차나 한잔 하기로 했다. 문을 들어서자 마자 보이는 첫번째 방에서 간단한 음료와 스낵을 즐길 수 있었다. 식사를 하겠다면 안쪽의 정찬 식당으로 자리를 안내해 주는 것 같았다. 정찬 식당에는 피카소와 유명인사들의 사진이, 기사 등이 걸려있었다.
커피는 없고 차와 맥주, 와인 등을 주문할 수 있다. 다른 테이블을 훑어보니 맥주를 주문하면 산미구엘 생맥주를 내는 것 같았다. 차는 2.4유로, 맥주는 3유로. 더 망설일 것이 없었다.
▲ 피카소가 머물던 카페어서 마신 산미구엘 생맥주.
맥주를 주문하면 절인 올리브를 서비스로 내어주는데, 이게 또 통조림 올리브와는 달리 깊은 맛이 있다. 생맥주 한 모금에 올리브 한입은 정말 최고의 궁합~!
진아에게는 생 초콜렛이 배달됐다. 이건 우리가 주문한 게 아니라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던 4GATS의 매니저가 보내준 선물이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던 진아는 초콜렛을 폭풍 흡입...;
4GATS에 전시된 두 개의 닮은 작품
▲ 자동차를 탄 라몬 카사스와 페레로 메우
▲ 자전거를 탄 라몬 카사스와 페레로 메우
4GATS에는 피카소를 비롯한 당대 유명 화가들의 크고 작은 그림과 이곳을 드나들던 예술가들의 사진들이 수 없이 걸려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길이 가는건 입구쪽으로 연결된 두 개의 방에 걸린 라몬 카사스(Ramon Casas)의 그림이다.
위 사진에서 아래쪽 그림이 카사스의 대표작, '자전거를 탄 라몬 카사스와 페레 로메우'라는 작품이다. 그림에서 앞에 있는 사람이 카사스 자신이고, 뒤에 서 있는 사람은 앞서 설명한 파리의 '르 샤 느와르'의 사회자이자 4GATS의 창업멤버인 페레 로메우(Pere Romeu)라고 한다. 공동경영을 뜻하는 것인지 심오한 의미를 담은 이 작품의 진품은 매일 몬주익 분수쇼가 열리는 카탈루냐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만난 예술 혼?!
전시된 그림을 따라 들어가다보면 두 개의 문이 있는 공간에 다다르게 된다. 여긴 뭘까?
바로 화장실이다. 이토록 예술혼 넘치는 화장실을 본적이 있던가?
4GATS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엽서와 찻잔 등 기념품으로 제작해 판매하기도 했다.
이렇게 한 시간 남짓, 피카소의 숨결을 느끼며 보낸 댓가는 고작 6유로. 프라도 미술관에서 진품을 보며 작품 모사를 하고, 알함브라의 궁전에서 디자인 패턴을 배우던 스페인의 예술가들까지 한꺼번에 떠오르며 이곳 사람들이 너무나 부러워졌다.
만약 내가 스페인에서 태어났다면,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었을까? ...
* 위치: Carrer Montsio 3 bis, 08002 Barcelona, Spain
* 전화: 93 302 41 40
* 가격대: 메뉴 델 디아(오늘의 메뉴 코스) 15.95 유로/ 맥주 3유로/ 차 2.4유로
막상 골목에 들어서면 커다란 입간판이 있어 찾기는 어렵지 않다.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