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모를 들고 떠난 감성여행, 하코네 수국 열차

사람마다 낱말의 의미를 기억하게 되는 사건이나 계기가 있다. 같은 낱말이라도 경험에 따라 저마다 떠올리는 이미지가 다르고, 같이 경험했다고 해도 꼭 그 낱말을 그 이미지로 기억하라는 법은 없다. 또 같은 이미지로 기억해도 전혀 다른 이해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가령 내 아이가 '밤색'을 '원숭이색'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내게 '꽃'이란 낱말은 '수국'의 이미지로 기억된다.

수국에 얽힌 추억 하나, 하코네 산악 열차

몇 해 전 봄, 도쿄 여행 중이었다. 3박 4일의 짧은 일정 이었지만 가까운 교외를 둘러보고 싶어하시는 어머니 덕에 당일치기 하코네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당일 아침에 여행지를 정한 터라 부랴부랴 가이드북에서 정보를 찾아 신주쿠 역으로 향했다. 가장 많이 이용한다는 이틀짜리 하코네 프리패스를 끊고 그렇게 아무 준비 없이 시작된 여행...

하지만 평생 이날처럼 다양한 교통수단을 접한 하루가 또 있을까? 지하철과 기차, 산악열차, 고속열차, 버스, 케이블카에 심지어는 배까지... 날이 어둑어둑 해질 때까지 신 나게 온갖 일본의 교통수단을 체험했던 것 같다.


일단 기차를 몇 번 갈아탔든 하코네 여행의 시작점이 되는 '하코네 유모토역'까지 갔다면 여기서부터 하코네 체험의 진수가 시작된다. 하코네 유모토에서 고라까지는 경사가 매우 가팔라 '산악 열차'만이 오를 수 있는데, 스위스에서나 볼법한 이 빨간 열차가 바로 우리를 하코네 온천까지 실어다 줄 등산 열차. 열차는 스위치 백(swichback)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산을 타는데, 급경사 부분에서 'Z'자 형태로 설치된 선로를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지그재그로 이동한다. 실제 열차에 타면 기관사와 승무원이 수시로 열차 앞, 뒤칸으로 자리를 바꾸며 운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참고: 스위치 백 (위키피디아)

그리고 뜻하지 않게 마주친 이 장면... 수국이 흐드러지게 핀 산길이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수국의 향연~ 평생 이렇게 많은 꽃을 본 적이 있던가? 사람 키를 훌쩍 넘긴 수국 나무에서 수천, 수만 송이의 수국이 저마다의 색을 뽐내고 있었다.

고장 세 량 남짓 되는 빨간 등산 열차와 녹음이 우거진 수풀, 그리고 푸른 수국이 어우러져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에라도 들어온 듯한 분위기. 봄비가 한차례 흩뿌린 뒤라 촉촉해진 산길을 우리는 그렇게 덜컹대며 달렸다. 

봄에서 초여름까지 하코네 산악열차가 다니는 구간에는 약 만 그루의 수국 꽃이 핀다고 한다. 그래서 하코네 산악열차를 '수국 열차'로 부르기도 한다고. 갑작스레 떠난 여행에서 뜻하지 않게 만난 수국. 그 강렬했던 인상 때문인지 난 매년 봄이면 화훼시장에 들러 수국 화분을 사곤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들여놓은 수국화분. 시간에 따라 색을 달리하다가 점점  퇴색되는 수국은 어쩌면 추억을 닮았다.

 하코네 열차의 종착지이자 로프웨이를 탈 수 있는 고라.

안개 자욱한 산은 벌써 여름 숲의 냄새가 난다.


바위 틈에서 허연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온천지대 오와쿠다니. 끓어오르는 뜨거운 온천수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쿠로다마고(검은 달걀) 판매소. 이 달걀 1개를 먹을 때마다 수명이 7년씩 길어진단다.


그나저나 이제 하코네 여행은 언제 또 가볼 수 있으려나.... 
지난 주 화훼시장에서 사온 수국 화분에 물을 주다가 뜬금없이 생각난 추억 하나.
 
[Tip]
* 하코네는 편도 이동 시간만 3~4시간이 걸려 1박 2일 코스를 추천한다.
   당일치기 여행을 하려면 돌아오는 길에는 고속열차인 '로망스카'를 이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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