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로그 그린 데이 2010. 5. 19. 07:00
665일, 말이 나날이 늘고 있다. 오래전 가르쳐준 단어를 하나씩 기억해내 엄마를 놀래키곤 하는데, 요즘엔 '나무'에 심취해 있다. 볕 좋은 날 손 잡고 밖에 나가면 고개를 젖히고 손가락질하며 '나무'를 말한다. 카시트에 앉아서도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나무를 말한다. 베란다 한켠에서 자라는 나무를 말한다. 살붙이고 산지 두 달째. 이제 눈높이가 좀 맞춰지는 것 같다. 며칠 전에는 집에서 여권 사진을 찍어줬다. 사진관까지 가기 번거롭기도 하고 어둡고 낯선 곳에서 고생만 할 것 같아 흰 벽을 배경으로 의자를 끌어 앉히고 양손에는 좋아하는 생일 인형을 쥐여줬다. 잠깐 신나하며 앉아있나 했더니 사진기를 들이대자 당황하며 뛰어내린다. 얼마 전만 해도 의자에 앉혀놓으면 쳐다만 볼 뿐 혼자 내려오지 못했는데 어느새 ..
센티멘탈 여행기/한 달쯤, 터키 그린 데이 2010. 5. 18. 09:35
'터키'하면 1,600년간 세계를 호령했던 옛 오스만 제국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블루모스크, 아야소피야, 술탄이 살던 궁전은 모두 대단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 이스탄불은 도시 자체가 하나의 박물관이라고 할만큼 멋진 곳이다. 하지만 나는 박물관에 있는 보석보다는 소박한 서민들의 삶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택한 여행지가 샤프란볼루. 오스만 시대의 전통가옥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아름다운 마을로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재다. 터키를 여행하고 온사람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곳이긴 하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그곳은 '시간이 멈춘 동화속 마을'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멋진 곳이었다. 흐드를륵 언덕에서 바라본 치르시 마을. 늦은 아침, 창문을 열고 오래된 동네에서만 느낄 수 있는 푸근함을 즐겼다. ..
센티멘탈 여행기/한국 구석구석 그린 데이 2010. 5. 17. 09:04
남아공월드컵이 20여 일 앞으로 바짝 다가온 어제, 월드컵 축구대표팀의 평가전이 열렸다. 상대는 우리보다 FIFA랭킹이 10여 위 높은 남미 에콰도르팀. 비운의 사나이 이동국의 골이 오프사이드로 선언되고 염기훈의 헤딩 슛이 골대에 막히는 수난을 겪었지만, 후반전에 이동국과 교체된 이승렬이 교체 7분 만에 한 골을 넣고, 그 후 이청용이 두 번째 골을 추가하며 시원한 연속골로 우리는 2대 0으로 승리하는 쾌거를 이뤘다. 헤어스타일을 상큼하게 바꾼 박지성은 며칠전 인터뷰에서 이번 에콰도르전이 남미팀인 만큼 월드컵에서 맞붙을 아르헨티나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었는데, 이번 경기로 말미암아 이승렬, 이청용, 정성룡 등 신예 선수들의 활약을 볼 기회도 된 것 같다. 월드컵 대표선수 최종 23인의 엔트리 명단이..
센티멘탈 여행기/한 달쯤, 터키 그린 데이 2010. 5. 14. 09:22
여행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낯선 곳에서 잠자기'가 아닐까. 내 몸의 껍질처럼 익숙한 침대와, 방과, 집과, 도시를 떠나 낯선 이들의 흔적으로 가득 찬 다른 도시, 다른 집, 다른 방, 다른 침대에서 잠든다. 불편하지만 고된 일정으로 노곤한 몸은 빠르게 잠으로 빨려 들어가고, 문득 새벽에 눈을 떴을 때 발견하는 것은 낯선 잠자리에 물든 낯선 나, 혹은 나에게 물든 낯익은 잠자리다. - '여행자의 로망 백서' 中 여행자에게 좋은 잠자리란 깨끗한 침대 이상의 의미가 있다. 특히 홀로 떠난 배낭여행객에게 숙소는 지친 몸을 누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자 잠시나마 무거운 짐을 보관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다. 친구를 사귀기도 하고 먼저 다녀간 이들이 남긴 방명록이나 메모를 보며 가이드북에는 없는 주변 여행지에 대..
센티멘탈 여행기/한 달쯤, 터키 그린 데이 2010. 5. 12. 07:00
이스탄불을 떠난 것은 어둠이 짙게 깔린 밤늦은 시각이었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샤프란볼루, 오스만 시대의 전통가옥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아름다운 마을로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재다.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6시간. 오토가르(고속버스 터미널)로 가는 길에 메시지를 확인했더니 이런 오싹한 문자가 와 있다. 터키에 테러라도 난 걸까? 나중에 확인해보니 터키 동부에 쿠르드족이 있는 '반' 같은 곳이 제한지역이란다. 외통부 홈페이지에 보니 테러위험 정도에 따라 여행경보를 4단계로 나누는데, 터키 대부분 지역은 1단계. 이스탄불 오토가르는 언뜻 보기에 우리의 고속버스 터미널과 닮아 있었다. 터키에서는 고속버스가 지역 간 이동의 주요 교통수단이다. 기차나 비행기도 있지만 기차는 출/도착시각이 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