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티멘탈 여행기/한국 구석구석 그린 데이 2014. 11. 15. 01:02
제주여행 사흘차. 이제껏 내가 알던 제주도는 진짜 제주가 아니었음에 화가 나기도 하고, 흥분되기도 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오늘 걸은 길은 화순 금모래해변에서 시작해 모슬포에서 끝나는 올레10코스. 유명한 산방산과 송악산을 거치는 길이지만, 내가 뽑은 하일라이트는 단연 '지질학 트레일'이다. 제주도에는 검은 현무암만 있는 게 아니었다. 걷는 내내 그 어디에서도 본적 없는 신기하고 괴상하고 독특한 암석들이 나를 흥분케 했다. 저게 모레가 아니라 암석이라니! 세상에, 해변에 동굴이 있어! 용암이 흘러 수분이 증발해 굳은 모양 그대로, 혹은 화산재가 식물의 훌륭한 양분이 되는 모습을 보며 오직 나 홀로 걷는 해변이라니... 사진을 정리하다가 두근두근 설레는 맘에 참지 못하고 무보정 날것..
센티멘탈 여행기/한국 구석구석 그린 데이 2014. 11. 7. 07:42
언제였더라...? 어렴풋하게 학창시절 수학여행의 추억이 떠오르긴 하는데, 기억나는 건 실제 내가 본 건지 백과사전 속 사진인지 헛갈리는 석굴암, 불국사, 첨성대 뿐. 그 주변에 뭐가 있었는지, 심지어는 단체사진을 어디에서 찍었는지 조차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엄청나게 큰 무덤과 장난기 많았던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를 뿐. 뽀얗게 먼지 쌓인 졸업앨범 세 권과 어릴적 사진들을 꺼내 보고서야 그게 고 1때라는 걸 알았다. 차 없이 경주로~ ▲ 창 밖에는 어느새 황금 들판이 넘실넘실~ 까마득한 수학여행을 기억을 더듬으며 경주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시끌벅적한 관광버스 대신 품위있는 KTX를 탔지만 마음만은 생기발랄 여고생. 오랜만에 혼자 떠나는 여행이라 더 설렜다고 하면 아이들이 서운해 할까? 우아하게 커피..
센티멘탈 여행기/한국 구석구석 그린 데이 2014. 10. 24. 07:30
선암마을 한반도 지형으로 가는 길에 우연히 '사과따기 체험' 플랙카드를 발견해 과수원에 들렀다. 농원은 진행방향의 반대쪽에 있었지만 '내일을 담보로 오늘의 즐거움을 미루지 않는다.'는 신조를 가진 스티브가 과감하게 (불법)유턴을 감행했다...; 즉흥적인 결정이었지만, 가제트의 팔처럼 길다란 막대를 가지고 사과를 따는 체험은 이번 여행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즐거웠던 기억으로 손꼽힌다. 알고보니 이곳은 '우연히 들르기로 유명한(?), 다래농원'~! 농장 앞에 차를 대고, 슬쩍 나무의 상태를 보니 사과는 이미 끝물임이 분명했다. 그래도 맛보기로 깎아 먹어 본 사과는 무척 달고 싱싱했다. 꼭지가 초록색인 사과를 본 적이 있던가? 아니, 꼭지가 달린 사과 자체가 정말 오랜만이었다. 마치 입시를 준비하며 미술학원에서..
센티멘탈 여행기/한국 구석구석 그린 데이 2014. 10. 23. 13:05
남편이 육아휴직을 한 후, 달라진 점 중 하나는 세상의 변화에 둔감해졌다는 것이다. 대신, 계절의 변화에 민감해졌다. 여행에 미친 우리에게 올 한해는 떠나기 좋은 계절과 그렇지 않은 계절로 구분되고 있다. 설악산 단풍소식이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던 지난 주말, 차를 몰고 강원도 영월로 향했다. 단풍이 무르익을 때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떠나고 싶은 마음을 참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서울 근교 나들이나 한강 산책은 간간히 했지만, 숙박을 겸한 여행은 지난 8월에 다녀온 태국 이후 참 오랜만이었다.만산홍엽 물든 계곡과 금빛 반짝이는 억새를 상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 치악산 휴게소에서 영월 지도를 함께 보는 가족. 영월에는 장릉, 청령포, 고씨동굴, 잣봉, 어라연, 선암마을 한반도 지형, 선돌, 별마로천문..
센티멘탈 여행기/한국 구석구석 그린 데이 2014. 10. 17. 16:54
요즘 한창 자전거에 빠지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자전거 도로 따라서 남양주쪽으로 가다보면 음식점이 하나 있는데, 늘 사람이 바글바글 하더라. 이름이 뭔지 모르겠는데, 앞에 강변 산책로도 있고, 주변이 아주 근사해~ 언제 같이 한번 가볼까? 아빠가 쏜다~ ㅎㅎ" 차로 1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곳은 남양주의 '봉주르 카페'. 뭔가 7080 카페를 기대하게 하는 소박한 이름이었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 널찍한 기업형 음식점이었다. 너른 마당에 가지런히 자란 나무들은 노랗게 잎이 물들어가고, 모닥불 옆에 옹기종기 앉아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가을 정취를 더했다. 방으로 안내받아 부모님께서 미리 점찍어두신 메뉴를 주문하고~ (아마 숯불고기 정식, 고추장 불고기 정식이었던 듯) 비빔용 나물과 강된장, 잡채, 밑반..